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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순양함의 함장으로서 [[1890년]] [[조선]]에 파견되어 [[위안 스카이]]와 비밀리에 회담하는 막후밀사 역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해군 대신이었던 [[사이고 쓰구미치]]의 후견으로 해군의 막후 실력자가 되었으며, 이때 사쓰마 번 출신 장교들에 대한 우대인사 관행과 해군의 군수 부정을 근절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대본영에서 해군의 지위를 육군과 동등하게 하려고 힘썼다. 그는 대청 강경책을 지지하여, [[청일 전쟁]]을 지도하였다. 그 후 해군대신 겸 해군대장으로 승진하여 [[러일 전쟁]] 당시에는 [[도고 헤이하치로]]를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발탁하여 승리에 기여하였다. 이후 [[남작]] 작위를 받고, 후에 후작까지 승진하였다.
 
[[1913년]]에는 총리대신에 취임하여 육군, 해군대신의 현직무관제를 폐지, 정부의 민주화와 문민화를 이루려고 하였다. 그러나 해군의 군수 조달에 관련된 부정사건([[시멘스지멘스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간토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 그는 다시 총리대신에 취임하여 [[도쿄]]의 재건에 큰 리더십을 발휘하였으나, [[1923년]] 12월에 벌어진 이른바 "천황 저격 음모 사건"이라고 부르는 [[도라노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후 정계를 은퇴하였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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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사쓰에이 전쟁 관련자]]
[[분류:보신 전쟁 관련자]]
[[분류:시멘스지멘스 사건 관련자]]
[[분류:막말의 사쓰마 번 사람]]
[[분류:해군병학교 (일본) 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