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경왕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KoreanHistoryWriter(토론)의 18782255판 편집을 되돌림 |
KoreanHistoryWriter (토론 | 기여) 118.176.227.194(토론)의 18782517판 편집을 되돌림 |
||
9번째 줄:
|자녀 = 없음
|왕조 = {{국기나라|조선}}
|아버지 = 익창부원군 [[신수근]]
|어머니 = 청원부부인 청주 한씨
|친척 = [[신수근]], [[신승선]], [[폐비 신씨]]
|출생일 = [[1487년]]
20번째 줄:
}}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 [[1487년]]~[[1557년]] [[12월 27일]]([[음력 12월 7일]]))는 [[조선]] [[조선 중종|중종]]의 정비(正妃)이다. 시호는 '''공소순열단경왕후'''(恭昭順烈端敬王后)이다. 익창부원군 신도공 [[신수근]](愼守勤)과 청원부부인 한씨(淸原府夫人 韓氏)<ref>신수근은 정실 영가부부인 권씨(永嘉府夫人 權氏)와 계실 청원부부인 한씨(淸原府夫人 韓氏) 등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단경왕후는 계실 한씨(韓氏)의 소생이다.</ref>의 딸로, 본관은 [[거창 신씨|거창]]
조선의 역대 왕비 중 제일 짧은 7일의 재위 기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역적의 딸로 연좌되어 폐출된 후 [[조선 영조|영조]]
== 생애 ==
[[1487년]] [[2월 7일]]([[음력 1월 14일]])에 신수근(愼守勤)의 딸로 태어났다. [[1499년]](연산군 5년) 13살의 나이에 당시 진성대군에 봉해져 있던 중종과 결혼하여 부부인(府夫人)이 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이 성공하면서 남편이
그녀가 폐위된 후 새로이 중종의 왕비가 된 [[장경왕후 (조선)|장경왕후]]가 [[1515년]] 사망하자, 담양 부사 등이 그녀의 복위를 간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복위를 반대하는 중신들에 의해 복위되지 못하였다. 훗날 단경왕후의 복위를 간한 사람들은 유배형에 처해졌다.
37번째 줄:
폐위된 이후 중종기에 그녀의 처우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없어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인종|인종]]이 즉위하여 그녀가 거처하는 곳에 폐비궁(廢妃宮)이라는 이름을 주고 생활에 보조를 하기 시작했다.
1557년(명종 12년) [[12월 27일]]([[음력 12월 7일]])에 71세의 나이에 사망하자 왕후
그녀는 계속해서 [[시호]]도 없이 폐비 신씨 혹은 신비(愼妃)라고 불리다가, [[조선 영조|영조]]
== 가족 관계 ==
; 본가 [[거창 신씨]]
* 증조부 : 황해도감사 증 영의정 거창부원군 양간공 신전(黃海道監司 贈 居昌府院君 領議政 襄簡公 愼詮)
* 증조모 : 증 정경부인 [[순흥 안씨]](贈 貞敬夫人 順興 安氏)<ref>지고주군사 안강(知高州郡事 安剛)의 딸.</ref>
58번째 줄:
*** '''친어머니''' : 정경부인 증 청원부부인 [[청주 한씨]](貞敬夫人 贈 淸原府夫人 淸州 韓氏)
; 왕가 [[전주 이씨]]
* 시조부 : 추존 [[조선 덕종|덕종]](德宗, 1438~1457)
* 시조모 : [[소혜왕후]] [[청주 한씨]](昭惠王后 淸州 韓氏, 1437~1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