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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 [[민주주의]] 또는 일체의 권위를 거부하는 [[평등주의]]를 제창했다; 서구는 대체로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구현한 나라들로 이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적 생활화의 요구는 일면 당연한 수순인듯 하다. 68 혁명 운동은 신좌파의 주도로 전통적 사회주의를 고무한 것은 사실이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억압적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과감한 철퇴를 내렸다는 사실이다. 68 혁명의 정신적 지주였던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후기 자본주의체제를 파시즘으로 규정했는데, 이런 현상은 가정으로까지 침투해 있었다.가부장 [[권위주의]]는 타매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고 여성주의자들은"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며 차별에 강력 저항했다. 특히, 관료적 권위주의는 동, 서구의 양체제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어서 매서운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집단과 조직사회 속의 [[관료주의]]도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교사, 교수의 [[권위주의]], 목사의 권위주의, 기업체 사장의 권위주의 등 모든 권위는 전방위적으로 비판되고 투쟁으로 추방할 것을 강조했다.
 
사람사는 세상, 인간다운 삶을 요구했다. 68 혁명은 무엇보다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넘어 그 소비체제의 [[물신]]주의, 물질숭배, [[인간소외]]에 저항의 초점이 맞춰졌다. 과거의 강압이나 착취에 의한 인간 통제와는 달리 후기 자본주의는 [[여론]]조작과 조종을 통해 부드럽게 인간을 지배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만천하에 폭로됨으로써 항거의 물결은 세차게 일었다. 68 혁명은 부의 증대, 경제 성장에 따른 과소비, 비인간화와 일상적 소외를 다양한 구호를 내걸고 정면으로 공략했다. "행동하라", "'''더 많이 소비하라, 더 빨리 죽으리니'''", "일하지 말라", "열정을 해방하라",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금지를 금지하라", "파괴는 창조의 열정이다",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한다", "굶주릴 지라도 권태로운 것은 못 참는다", "선거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투쟁은 계속된다" - 이처럼 경제가 발전할수록 [[인간성]]이 황폐화되는 것을 목도하고 인간다운 세상의 건설을 위해 물질주의와 물질에 사람이 종속되는 삶을 거부하고 대지를 요동치는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68 혁명에 이념적 근거를 제공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억압이 없는 현실원칙"이 관철되는 이상사회의 실현을 확신하며 "두려움없는 최고의 평등한 자유를 얻기위한 투쟁의 의미로 "'''위대한 거부'''"를 역설했다. 이는 혁명과 전복의 다른 이름이었다. 또한 [[크리스 하먼]]은 "68 혁명은 세상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강력하게 뒤흔들었다. 그 충격파는 많은 사람들을 해방으로 이끌었으며, 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고 언명(言明)했다. <ref>정병기 역, 《상상력에 권력을》 메이데이, 337, 341쪽</ref>
 
== 혁명의 전개와 영향 ==
파리 [[낭테르 대학]]이 학생들과의 대립으로 학교를 일시 폐쇄하자 이에 항의하여 [[소르본 대학]]의 학생들이 [[5월 3일]] 광장으로 나온 것을 기점으로 시작된, 파리에서의 학생, 노동자의 시위와 파업은 6월 들어 베를린과 로마로 퍼져나갔다. 학생들의 학교점거가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영국도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의 거센 시위는 서구를 넘어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등에서도 발생했으며, 진압도중 수많은 생명을 잃는 참사를 빚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서 [[혁명]]의 물결이 넘쳤다. 도쿄 오사카 등 주요대학에서 점거 투쟁이 벌어졌고 미군기지도 습격을 당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에 더해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으로 확대되었다.이같은 일련의 저항은 자본주의 진영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회주의]] 진영이던 동구의 여러나라에서도 요동쳤다. 68 혁명은 세계적 차원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저명한 학자인 [[월러스틴]]은"'''이제껏 세계적 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다 실패로 끝났지만 둘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68 혁명의 시작이 엄밀히 말하면 파리가 아니었다. 이 저항과 혁명의 거대한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베트남]]전쟁이었다. 베트남 인민들의 제국주의에 대한 가열찬 저항과 투쟁은 전 세계 반전 평화주의자들에게 심금을 울려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68년 1월 구정(설날)대공세로 명명된 대대적인 베트남 인민의 공격은 전 세계 학생과 시민들의 [[반전 운동]]과 [[해방운동]]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고 이는 68 혁명이 사회 [[문화혁명]]으로 국지적인 아닌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시위가 3달 가까이 지속되자 시민들과 언론은 점점 무질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 반발심리로 곧 이어진 총선에서는 우파가 대거 득세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은 상대주의의 극단화는 정치적 보수주의를 부르게 된다는 역사적 진리를 다시 체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