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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60년대 서독 정부에 핵무기 개발을 함께 추진하자고 제의를 했었다가, 서독 정부로 부터 거절을 당했다.<ref>日, 1960년대에 핵무기 개발 시도..서독과 접촉, 파이낸셜뉴스, 2010-10-04</ref> 당시 일본 외무성 당국자는 "국제적으로 감시해도 핵분열 물질의 5% 정도의 추출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핵탄두 생산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f>40년전 日 정부 "핵보유 능력 있다", 연합뉴스, 2010-11-30</ref> 보통 원전 연료용 저농축 우라늄의 수출입 과정에서 많은 오차가 생기곤 한다.<ref>수입 천연.농축우라늄 어디로 갔지?, 노컷뉴스, 2005-10-06</ref>
===1983년===
1983년 미국의 퍼싱 핵미사일이 독일에 배치되었다. 독일 사민당(SPD)의 국방전문가였던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는 원래 유럽의 나토국가 내의 핵무기 배치를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소련의 선제공격 목표가 되기 때문이며, 같은 이유로 [[아데나워]] 수상이 시도했던 서독의 독자 핵무기 소유 역시 반대하였다. 그러나 슈미트 수상은 1977년 런던에서 ‘소련이 바르샤바조약 국가에 배치한 신형 중거리핵미사일 SS20이[[SS-20]]이 유럽의 군사균형을 결정적으로 깨뜨렸다’는 연설을 함으로써 1979년 나토는 이중전략을 결의하였다. 그것은 소련과의 협상을 통해 SS20을[[SS-20]]을 철거하도록 만들 수 없다면 4년 후인 1983년 말부터 미국은 신형 중거리핵미사일 퍼싱II를[[퍼싱 II]]를 나토국에 전면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퍼싱II퍼싱 II]]의 배치를 놓고 당시 서독에서는 시민, 지식인과 학생 심지어 군인들도 참가한 거대한 평화운동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정확도가 극히 높아져 폭발력이 낮아진 퍼싱II는 적의 지휘부와 벙커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선제공격무기이며, 따라서 소련의 재래식 침공에도 나토가 핵전쟁을 먼저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토의 이중전략은 고르바초프의 소련으로 하여금 군비경쟁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1987년 유럽에서 모든 중거리핵미사일을 제거하는 결과를 낳았다.<ref>‘북핵 실제 반대’ 중국환상과 우리의 대북정책 실패, 데일리NK, 2016-09-19</ref>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