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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1-11-29}}
'''흥청'''(興淸)은 조선 연산군 10년(1504)에 나라에서 모아들인 기녀(妓女)다.
연산군은 향연을 베풀기 위한 관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했으며 이는 당시 다른 여러 나라의 상황을 보았을때 딱히 욕할 일이 아니었다. 연산군은 조선 팔도에 채홍사(採紅使),채청사(採靑使)를 파견, 아름다운 처녀와 건강한 말을 뽑고 각 고을에서 관기들을 관리하게 했다. 이들을 운평, 계평, 채홍, 속평 등 여러단계의 호칭으로 분류, 관리 하였으며 이들 가운데 제일 우수한 자들을 '흥청'이라고 하였는데, 임금이 이중 우수하다 인정한 이는 '천과흥청'이라고 하였다. 흥청을 만들거나 여러 여자를 두었다고 욕하는 것은 사실 연산군이 당쟁이 없고 중국에 휘둘리지 않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연산군은 당대에 중국에 충성하던 유학자들뿐만 아니라 현재의 친일 식민사관론자들이 보기에도 매우 위험한 군주였던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저평가 받았던 광해군과 더불어 최근에 와서야 재평가 받고있는 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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