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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ungukgimucheo joseokjin.jpg|thumb|right|[[군국기무처]]]]
'''갑오개혁'''(甲午改革)은 [[1894년]] [[7월 27일]]([[음력]] 6월 25일)<ref name="제1차"/>부터 [[1895년]] [[7월 6일]]([[윤달|음력 윤]]5월 14일)<ref name="제2차종결"/>까지 [[조선]] [[정부]]에서 전개한 제도 개혁을 말한다. 10년 전 [[갑신정변]]의 실패 후 망명했던 [[개화파]]들이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의 위세를 업고 돌아와 추진한 일본식 개혁으로서 '''갑오경장'''(甲午更張)<ref>경장(更張): 거문고 줄을 다시 튜닝한다는 뜻. 해이해진 옛 것을 다시 고친다는 의미가 있음. 정치적, 사회적으로 묵은 제도를 고친다는 의미. -출처: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2262800 '경장' 네이버 국어사전]</ref>이라고도 불렸다. 내각의 변화에 따라 제1차 갑오개혁과 제2차 갑오개혁으로 세분하며, 이후 [[을미개혁]](제3차 갑오개혁)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요 내용은 신분제([[노비|노비제]])의 폐지, [[은본위제]], 조세의 금납 통일, 인신 매매 금지, [[조혼]] 금지, [[과부]]의 [[재혼|재가]] 허용, [[고문]]과 [[연좌법]] 폐지 등이다.<ref name="국사교과서">
 
내각의 변화에 따라 제1차 갑오개혁과 제2차 갑오개혁으로 세분하며, 이후 [[을미개혁]](제3차 갑오개혁)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요 내용은 신분제([[노비|노비제]])의 폐지, [[은본위제]], 조세의 금납 통일, 인신 매매 금지, [[조혼]] 금지, [[과부]]의 [[재혼|재가]] 허용, [[고문]]과 [[연좌법]] 폐지 등이다.<ref name="국사교과서">
{{서적 인용
|저자=국사 편찬 위원회
|출판위치=서울
|쪽=336
}}</ref>
}}</ref> [[박영효]]가 13만8천 자에 달하는 개혁 상소문(건백서)을 고종에게 올리는 등 성공적으로 추진되는 듯했던 개혁은 일본이 [[러시아]] 등의 [[삼국 간섭]]으로 그 위세를 잃으면서 추진력을 잃었다.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제거하나,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러시아]]를 등에 업은 [[수구파]]들이 [[개화파]]를 일본으로 쫓아내며 개혁은 최종 무산된다.
 
갑오개혁은 봉건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선 사회 내부의 개혁적 요구를 반영해 신분제를 철폐하는 등 근대적 제도 개혁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일본제국]]의 위세에 의존한 일부 세력을 중심으로 개혁이 추진됨으로써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했고 일본이 [[러시아]] 등의 [[삼국 간섭]]으로 그 위세를 잃으면서 추진력을 급격히 상실하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제거하였으나,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러시아]]의 세력을 등에 업은 세력이 득세하였고, [[김홍집 (1842년)|김홍집]] 등 중심 인물들이 백성들에게 살해되거나 일본으로 도주·망명하여 근대국가 수립이라는 개혁의 목표는 실현되지 못했다.
 
== 배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