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43번째 줄:
=== 을미개혁(제3차 갑오개혁) ===
{{본문|을미개혁}}
제3차 갑오개혁([[을미개혁]])은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을미사변]] 직후<ref>[http://sillok.history.go.kr/id/kza_13208020_004 이재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고종실록 33권, 고종 32년 8월 20일 4번째기사.</ref>부터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때까지 제3차 [[김홍집 (1842년)|김홍집]]이 살해될 때까지 제3차 김홍집 내각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친일세력들이 내각을 구성하여 주도한 개혁으로 가장 친일적 성향이 짙었다.
 
을미개혁 때는 연호를 '[[건양]]'으로 고치고, [[단발령]]을 단행하였다. 처음으로 [[태양력]]을 도입하여 태양력을 기준으로 정삭(정월 초하루, 지금의 [[양력설]])을 정하였고, 정부 주도로 [[종두법|종두]]를 시행하였다. (사설 의원에서의 인두 및 우두 접종은 그 전에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근대적 [[우편]]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우체사가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