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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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갑오개혁은 [[1894년]](고종 31년) [[7월 27일]](음력 6월 25일)<ref name="제1차">[http://sillok.history.go.kr/id/kza_13106025_007 군국기무처 회의총재에 김홍집을 임명하여 사무를 협의하여 거행하도록 하다] 고종실록 31권, 고종 31년 6월 25일 7번째기사.</ref>부터 1894년 12월 17일(음력 11월 21일)<ref name="제2차"/>까지 [[김홍집 (1842년)|김홍집]]을 중심으로 [[군국기무처]] 주도 하에 추진되었다.
제1차 김홍집 내각이 설치한 [[군국기무처]]는 김홍집, [[김윤식 (1835년)|김윤식]], [[김가진]] 등 17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임시 합의기관으로서, 행정제도, 사법, 교육, 사회 등 전근대적인 여러 문제에 걸친 사항과 정치 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특히 '[[개국 (조선)|개국]]' 기원 [[연호]]를 사용하여 [[청나라|청]]과의 대등한 관계를 나타냈고, 중앙관제를 [[의정부]]와 [[궁내부]]로 구별하여 기존 조선의 [[6조]]체계를 8아문(八衙門: [[내부 (대한제국)|내무]]·[[외부 (대한제국)|외무]]·[[탁지부|탁지]]·[[군부 (대한제국)|군무]]·[[법부|법무]]·[[학부 (대한제국)|학무]]·[[농상공부|공무·농상]])으로 개편하였으며, 이를 의정부 직속으로 두었다. 개혁전담기구였던 [[군국기무처]]는 제2차 개혁 때 폐지되었다.
흥선대원군이 7월부터 8월까지 1개월 남짓 동안 [[섭정]]을 하였으나, 일본과의 입장 차이로 은퇴를 강요받았다.
경제적 측면에서 [[은본위제|은 본위 화폐 제도]]를 실시하고 도량형을 통일하였으며, 조세의
=== 제2차 갑오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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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갑오개혁([[을미개혁]])은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을미사변]] 직후<ref>[http://sillok.history.go.kr/id/kza_13208020_004 이재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고종실록 33권, 고종 32년 8월 20일 4번째기사.</ref>부터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직전까지 제3차 [[김홍집 (1842년)|김홍집]] 내각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친일세력들이 내각을 구성하여 주도한 개혁으로 가장 친일적 성향이 짙었다.
[[단발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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