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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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년]]부터 [[1242년]]까지 있었던 [[몽골 제국]]의 침공, [[1271년]]에 있었던 [[보헤미아]]의 침공으로 인해 죄르는 크게 파괴되었다. [[1541년]]부터 [[17세기]] 말까지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 중부, 동부를 지배하던 동안에 죄르는 폐허로 남아 있었으며 [[터키어]]로는 '야느크칼레'({{llang|tr|Yanık kale}}, "불에 탄 성"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들이 죄르를 재건하면서 도시 안에는죄르에는 새로운 성과 요새가 건립되었다. [[1594년]] 헝가리군의 보병 사령관이었던 체스네키 야노시(Cseszneky János)가 사망하면서 오스만 제국 군대가 죄르를 정복했지만 [[1598년]] 헝가리-오스트리아 연합군이 죄르를 탈환했다.
 
[[1743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에 의해 [[제국자유도시]] 칭호를 받으면서 죄르에는 학교, 성당, 병원, 수도원이 건립되었다. [[1809년]]에는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인해 파괴되기도 했지만 나중에 재건되었다.
 
[[19세기]] 중반에는 도나우 강에 증기선이 운항하면서 무역 도시로 발전했지만 [[1861년]] [[부다페스트]]와 [[너지커니저]]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쇠퇴했다. 죄르의 지배자는 공업화를 진행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인해 크게 파괴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