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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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angudae2.jpg|thumb|292px|암각화가 있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의 모습]]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畫<ref name="관보제17413호">[http://gwanbo.moi.go.kr/gwanbo/ebookFileDownload.gz?ebookSeq=00000000000000001319097138021000&fileType=PT001 관보 제17413호] 2010년 12월 27일.<!--월요일--> 291-318쪽. 304쪽. 문화재청고시제2010-133호(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석조문화재> 지정명칭 변경). 문화재청장. 2016년 5월 10일 확인함.</ref>, {{llang|en|Bangudae Petroglyphs}})는 [[울산광역시]] 태화강 상류의 지류 하천인 [[대곡천 (울산)|대곡천]]의 절벽에 새겨진 그림이다. 그림이 새겨진 바위는 너비가 약 8m, 높이 약 5m로 주변 10여개의 바위에도 암각화가 확인 된다. 반구대 암각화는 지금까지 지구상의 알려진 가장 오래된 포경유적이다.<ref name="박물관">{{웹 인용|url= http://bangudae.ulsan.go.kr/pds/pds03.jsp|제목= 자료실, 반구대암각화|웹사이트=울산암각화박물관|확인날짜=2016년 5월 11일}}</ref>
 
그림이 새겨진 바위는 너비가 약 8m, 높이 약 5m로 주변 10여개의 바위에도 암각화가 확인 된다. 반구대 암각화는 지금까지 지구상의 알려진 가장 오래된 포경유적이다.<ref name="박물관">{{웹 인용|url= http://bangudae.ulsan.go.kr/pds/pds03.jsp|제목= 자료실, 반구대암각화|웹사이트=울산암각화박물관|확인날짜=2016년 5월 11일}}</ref>
하지만 암각화가 사연댐의 완공된 1965년 이후인 1971년 12월에 발견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수위가 상승하여 1년 중 8개월 동안 잠기면서 훼손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2014년 부터 보존 사업을 진행하였으나 연이은 실험 실패로 2016년 중단되었다.
 
하지만 암각화가 사연댐의 완공된 1965년 이후인 1971년 12월에 발견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수위가 상승하여 1년 중 6~8개월 동안 잠기면서 훼손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2014년문화재청과 부터울산시가 보존보존을 사업을위해 진행하였으나노력하고 있으나 보존 연이은방법을 실험놓고 실패로갈등이 2016년계속되고 중단되었다있다.
 
==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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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지정 당시인 1995년에는 반구대 암각화에서 300여 개의 그림이 육안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2016년 최근 조사에서는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그림은 20~30점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문화재청의 조사에서도 암각화의 풍화 단계가 6단계 중 5단계인 '흙 상태 진입 직전'인 것으로 들어났다.<ref name=감일상/>
 
이런 상황에서 암각화의 문화제문화재 지정도 뒤늦게 이루어졌다. 발견된 후 24년 동안 방치되다 시피 하다가, 지난 1995년에야 비로소 국보 285호로 지정된 것이다. 이는 암각화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인식이 충분치 못하던 시기였기에 발생한 일이였다.<ref name=감일상/>
 
== 보존 갈등 ==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다각적인 보존 노력을 진행하고하고 있으나 보존 방법을 놓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울산시는 2009년과 2011년에 임시제방 설치안을 문화재청 소속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두 번 모두 공사로 인해 암각화 주변의 원형이 훼손되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어렵다는 이유로 부결하였다. 더불어 훼손의 주범인 사연댐의 수위를 낮출 것을 주문하였다.<ref name=도재기/> 그러나 울산시는 식수 확보를 위해 수위를 놔두고 생태 제방을 쌓자는 주장을 고수한다.<ref name=감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