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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sdras-Ezra.jpg|thumb|200px|에즈라 (''Promptuarii Iconum Insigniorum'')]]
'''에즈라'''(''Ezra''<ref>"[[God]] helps") -"Jewish Encyclopedia", [[Emil G. Hirsch]], [[Isaac Broydé]], "[http://www.jewishencyclopedia.com/view.jsp?artid=578&letter=E Ezra the Scribe]", ''[[Jewish Encyclopedia]]'' (Online)</ref>, עזרא, 기원전 480~440년) 또는 '''에스라'''는 [[에즈라기|에즈라서]]에 나오는 성직자이다.
 
서기관 에스라 (Ezra ha-Sofer)라고 불리는 에스라 (히브리어 : עזרא, Ezra, 기원전 480-440), 또 제사장 에스라는 유대인의 서기관(기록자)와 제사장이었다. 그리스-라틴어에서는 에스라는 에스드라 (Esdras, 그리스어 : Ἔσδρας)라고 불린다.
 
[[히브리어 성경]]에 따르면 그는 첫 번째 성전에서 봉사한 마지막 대제사장 스라야(에스라 7:1) ([[열왕기]]하 25:18)의 후손이고, 예루살렘 귀환 이후 둘째 성전의 제사장이었던 예수아의 먼 친척이었다(역대상 5:40-41, CJB 및 이와 유사한 번역, 에스라 3:2 참조).
 
그는 바빌론 유배지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서 모세의 율법을 다시 소개했다 (에스라 7-10 장과 느헤미야 8 장). 동방 정교회 (Eastern Orthodoxy)에서 사용 중인, 에스라서의 헬라어 번역본 에스드라(Esdras)에 의하면, 에스라는 대제사장이다. 하지만 유대교 랍비 전통에 의하면, 그는 단지 일반 제사장 중 하나였다고 한다. 
 
에스라의 무덤에 관해서 여러 전해 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한 전설에 따르면 그는 바스라 (이라크) 근처 알 우자이al-Uzayr에 안장되었다고 하며, 또 다른 전설은 시리아 북부 알레포 (Alleppo) 근처의 타디프(Tadif)에 묻혀 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 עזריהו Azaryahu, "God-helps"의 약어일 수 있다. 그리스어로 쓰여진 70 인역 번역 성경에서 그의 이름은 Ésdrās (Ἔσδρας)로 표시되었고,이 이름에서 라틴 이름 에스드라가 나온다. 
 
에스라서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서 살고있던 유대인 일부를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인도하는 과정이 나온다 (에스라 8.2-14). 에스라는 모세 5경에 대한 준수를 강요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에 따라 확신을 갖고 특정 종교의 사람들과 결혼하지 않도록 권고했는데, 이 가르침은 모세 오경에 기록되어있다. 
 
[[유대교]]의 현인을 기리는 [[Chazal|Chazalic]] 문학에서 에스라 서기관"Ezra the scribe"으로 알려진 에스라는 유대교에서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다.
 
== 유대 성경의 관점 ==
성경 정경의 에즈라 책과 느헤미야서는 에즈라의 활동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반면 에즈라에 관한 다른 책들은(첫째 에스드라, 3-6 에스라) 나중 정경 에스라와 느헤미야 서애 기초해서 만들어졌다.
; 에스라-느헤미야 서
에스라 - 느헤미야 서는 원래 두루마리로 엮어진 한 개의 문서였다. (느헤미야 3:32, 각주) 후에 유대인들은이 두루마리를 나누어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에스라라고 불렀다. 현대 [[히브리어 성경]]은 현대 다른 성경 번역과 마찬가지로 이 두 권의 책을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부른다. 에즈라 서 몇 부분(4:8~6:18과 7:12~26)은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대부분은 히브리어인데, 에즈라 자신은 두 언어에 능숙했다.
 
에즈라는 바빌론에 살고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칠년 (기원전 457 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라고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많은 포로된 유대인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에스라는 그곳의 유대인들이 유대인이 아닌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절망 속에서 자신의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며, 동족 몇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죄 많은 결혼 생활을 해소함으로써 공동체를 정화하려고 했다 . 몇 년 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도시 벽을 재건하는 임무를 지닌 주지사로 예루살렘에 느헤미야(유대인 귀족 집안이면서 왕의 측근이었다)를 보냈다. 성벽이 완성되자, 느헤미야는 에스라에게 모세 율법 (토라)을 모은 책을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읽게했고, 백성과 제사장은 율법을 지키고 모든 다른 민족들과 섞이지 않겠다는 언약을 맺었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