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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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미수: 을미내각은 김홍집을 기준으로 제3차 내각(제3차 김홍집 내각), 갑오개혁 전체를 기준으로 제4차 내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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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미수 ====
이어서 들어선 박정양(朴定陽)내각이 열강에 접근하려는 정책을 쓰자, [[일본]]은 이를 경계했고 그는 이 사이 일본측과 접촉하였다. 박정양 내각이 새로 세력을 뻗기 시작한 구미 열강에 친근하려는 정책으로 기울어지자 일본 제국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죽인 후 [[김홍집갑오개혁#을미개혁(제3차 내각갑오개혁)|제4차제3차 김홍집 내각]]을 조직하였다.
 
[[10월 8일]] 왕비가 암살당하자 김홍집은 자결하려 하였다. 때마침 김홍집을 방문했던 [[유길준]]은 그럴 필요 없다며 김홍집을 극구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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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2|유공 그대가 말하는 뜻은 다 알아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보전과 개혁을 위하여 모든 굴욕을 참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번 사태만은 절대로 저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세록지신으로 또 일국의 중신된 자가 국모의 참변을 보고 어찌 살아서 폐하와 만백성을 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유공의 처지와 다릅니다. 유공은 어떤 난국이라도 극복해서 앞으로 이 나라를 건져야 할 사명이 있지만 내가 할 일은 이제 내 스스로 죽는 일 밖에 없습니다.<ref name="yudong205"/>}}
 
[[유길준]]은 어렵게 김홍집을 설득하여 자살하려는 것을 말리고 대궐로 데려갔다. [[1895년]] [[10월 9일]] 명성황후 암살사건이 일어난 뒤 내각[[을미개혁|김홍집을 개편으로수반으로 4차내각이 내각을 구성하였다개편]]되었다.
 
=== 몰락과 최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