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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살설 ====
정조 사후 독살설이 제기되었다. 그 근거는 연훈방을 써서 수은에 중독되어 죽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방법을 주선한 심환지와 이시수가 소론의노론의 벽파라는 것과 정순왕후가 정조를 독대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조가 사망하였다는 것이 이러한 독살설을 부추겼다.<ref>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5:문화군주 정조의 나라 만들기》, 한길사, 2001년, ISBN 978-89-356-5154-2, 37쪽</ref> [[남인]]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정황 때문에 정조가 독살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파다하였다.<ref name="이덕일_독살사건_4장" /> [[8월 18일]] [[경상도]] [[안동]]의 [[남인]] 출신 거족 여현 [[장현광]]의 후손 [[장현경]]과 그의 친족인 [[장시경]] 3형제 등은 정조의 독살을 주장하며 원수를 갚겠다고 거병하였다가 실패하고 일족이 처형당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wa_10009023_001&tabid=k 순조 1권, 즉위년 9월 23일(임인) 1번째기사 / 경상도 안핵사 이서구와 경상 감사 김이영이 장시경의 역모를 보고하다]</ref> 정약용은 여성 유배인이 현지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일을 개탄한 〈고금도장씨녀자사〉(紀古今島張氏女子事)를 적으면서 심환지가 심인을 추천하여 정조를 독살하였다는 의심을 남겼다.<ref>정약용, 〈고금도장씨녀자사〉, 《여유당전서》16권</ref>
 
== 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