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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국기나라|조선}} [[평안도]] [[평양부]]
| 사망지 = {{KOR}} [[서울특별시]]
| 사망일 = {{사망일과
| 국적 = {{KOR}}
| 장르 =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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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양행 ===
[[1926년]]에 귀국하여 종로2가에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라초이 회사 경영때 필요한 [[녹두]]를 구입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북간도]]에 거주하던 부모와 동생들을 만난 일 때문이었다. 부모는 큰 아들이 보내준 100달러로 땅을 사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대다수의 조선사람들은 그렇지 못해서 [[질병|병]]이나 민중작가 [[최서해]]의 [[소설]] 《[[탈출기 (소설)|탈출기]]》에서 묘사된 것처럼 굶주림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유일한은 [[한민족]]의 건강유지에 필요한 [[결핵]]약, 이전에는 [[미국]]에서 약품을 수입하여 팔던 [[유한양행]]이 [[1933년]]에 처음 개발하여 판매한 제품인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 <ref>[http://h21.hani.co.kr/section-021142000/2006/11/021142000200611030633039.html 한겨레 21, 2006년11월03일 제633호 '만병통치약을 경계하다.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202245.html 한겨레 2007년 4월 11일자, 한국기독교 120년-숨은 영성가를 찾아 ⑪ 유일한 선생]</ref> 1936년 유한양행은 한국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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