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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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이름 = 大山倍達
|출생일 = [[1923년]] [[6월 4일]]
|사망일 = {{사망일과 만나이나이|1994|4|26|1923|6|4}}
|그림 = Masutatsu_Oyama_being_trained.jpg
|출생지 = [[일제 강점기|일제 강점기 조선]] [[전라북도]] [[김제시|김제군]] 용지면 와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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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의는 무술의 기본기를 이해하기 위해 [[유도]]를 연마하기도 했다. 전설적인 유도인인 [[기무라 마사히코]]는 도쿄 나카노에 있는 소네 도장에 최영의를 소개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4년간 수련하여 유도 4단이 되었다. 그는 그래플링에 있어서는 기무라가 한수위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 최영의는 쿠미테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시험했다. 쿠미테는 2분동안 상대방과 겨뤄 승자를 판명하는 대련이다. 최영의는 100인 쿠미테를 만들었는데, 이는 100명의 상대와 3일에 걸쳐 대결하며 3번 이상 연속으로 승리하면 성공으로 치는 승단 심사의 종류이다.
 
* 최영의는 맨손으로 황소와 싸운 것으로도 유명했다. 일생동안 그는 52마리의 황소와 격투를 벌였는데 그 중 3마리가 격타 한 번 만에 즉사해 최영의에게 '신의 손'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다만 이에 대한 증거 영상이라곤 기력이 없어 보이는 코뚜레를 한 소와 싸우는 편집된 홍보 영상뿐이라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 최영의는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프로 레슬러들과 많은 시합을 벌였다. 최영의는 1958년 개정판 <What Is Karate(한국어 제목: 가라테는 무엇인가)>에서, 자신은 그 때까지 하와이에서 활동하던 프로 레슬러 3명과 시합을 가졌으며 부상으로 장학금을 30번 받고 텔레비전에도 9번 방영되었다고 적었다.
 
*가장 가라데에 이상적인 인물은 자신의 내제자 [[니콜라스 페타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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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기에 최영의는 [[관절염]]을 앓았다.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그는 수련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격파 시범 등을 통해 공수도를 계속해나갔다.
 
* 최영의는 약 80권 가량의 책을 썼고, 일부는 한국어를 비롯한 외국어로도 번역출간되었다. 일본에서는 최영의가 쓴 책은 물론 그에 대해 쓴 책들도 출판되었으며,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조명하여 스크린에 담은 장편영화나 모험담을 자세히 다룬 만화책도 큰 인기를 끌었다.
 
* 최영의가 사망하기 전, 그가 창립한 국제공수도연맹 극진회관은 세계 120여개국에 지부를 두고 공식인원 5백만 명 이상의 수련생을 자랑하는 세계 주요 무술단체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러나 최영의의 사망 이후 후계문제의 갈등으로 극진회관은 다양한 단체로 분리되었다.
* 최영의는 1994년 8월 26일, 70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 최영의는 1994년 8월 26일, 70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 최영의는 1964년 일본 국적을 취득하였으나, 귀화 후 국적 말소 신청을 하지 않아 한국에도 호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국적 상실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적이 남아 있는 것일 뿐 그가 귀화할 당시 한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국적 상실 신고 여부와 관계없이 최영의는 이중국적자가 아니다.<ref>[http://www.law.go.kr/lsInfoP.do?lsiSeq=151992&efYd=20140619#0000 국가법령정보센터 국적법 제 15조 1~2항]</ref>
* 최영의는 한국과 일본에서 [[중혼]]을 했다. 즉 이혼없이 두 가족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도 중혼은 금지되어 있으나 도쿄 법무국과 일본 법원에서 일본과 한국의 호적상 생일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판결한 덕분에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1946년에 일본인 오야마 치야코(1926-2006)와 결혼하여 딸 3명을 낳았고, 70년대에 한국인 홍순호와 결혼해 아들 3명을 낳았다. 평소에는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한달에 한번씩 한국에 들어와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ref>[http://news.joins.com/article/3504545 조인스 뉴스]</ref> 오야마 치야코는 최영의 사망 이후 극진회관이 분열되었을때 극진회관 오야마파의 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영의의 딸과 아들들은 각각 일본과 한국에서 최영의 총재를 기리는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 최영의는 한국과 일본에서 [[중혼]]을 했다. 즉 이혼없이 두 가족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도 중혼은 금지되어 있으나 도쿄 법무국과 일본 법원에서 일본과 한국의 호적상 생일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판결한 덕분에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1946년에 일본인 오야마 치야코(1926-2006)와 결혼하여 딸 3명을 낳았고, 70년대에 한국인 홍순호와 결혼해 아들 3명을 낳았다. 평소에는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한달에 한번씩 한국에 들어와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ref>[http://news.joins.com/article/3504545 조인스 뉴스]</ref> 오야마 치야코는 최영의 사망 이후 극진회관이 분열되었을때 극진회관 오야마파의 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영의의 딸과 아들들은 각각 일본과 한국에서 최영의 총재를 기리는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 작품 속 최영의 ==
 
* 1971년, 최영의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 《{{ruby|空手馬鹿|からてばか}} {{ruby|一代|いちだい|가라테 바카 이치다이}}》(한국판 제목: 《무한의 파이터》)가 주간 소년매거진에 실렸다.<ref>원작자는 [[가지와라 잇키]]이며, 그림은 [[쓰노다 지로]]와 [[가게마루 조야]]가 맡았다.</ref> 1973년에는 47화로 각색한 애니메이션에서는 내용이 일부 변경되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인공인 최영의, 즉 오야마 마스타쓰가 가상의 캐릭터인 아스카 켄으로 바뀌었다. 비록 이 애니메이션은 그 내용이 원작만화와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만화에서처럼 최영의의 활약상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 가지와라 잇키, 쓰노다 지로, 가게마루 조야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3부작 무술 영화 《{{lang|ja|けんか空手 極真拳|겐카 가라테 교쿠신켄}}(Champion of death, 1975)》, 《{{lang|ja|けんか空手 極真無頼拳|겐카 가라테 교쿠신 부라이켄}}(Karate bearfighter, 1975)》, 《{{lang|ja|空手馬鹿 一代|가라테 바카 이치다이}}(Karate for life, 1977)》에서는 일본 배우 [[치바 신이치]]가 최영의 역을 맡았다. 처음의 두 영화에는 최영의도 나온다.
 
* SNK 비디오 게임인 <[[킹 오브 파이터]]>, <[[용호의 권]]> 시리즈에서 [[사카자키 다쿠마]]([[미스터 가라테]]라고도 함)는 최영의를 묘사한 캐릭터이다. 사카자키 다쿠마는 최영의의 극진공수도를 주 기반으로 한 가상무술 '용호의 권'의 창시자이자 달인으로 묘사되었다.
 
*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만화 <[[격투맨 바키]]>에서 최영의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캐릭터인 [[오로치 돗포]]는 공수도의 달인이며, 자신의 공수도 학교인 신심회의 창시자이다. 이타가키의 또 다른 작품 중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아랑전]]>이 있다. 이 작품에서도 최영의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 [[마쓰오 쇼잔]]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 한국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극진공수도를 개발하기 전 공수도 수련생이었던 청년 최영의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