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 (촉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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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년]] 유선이 즉위하자 중호군(中護軍)·정남장군(征南将軍)이 되고, 이후 영창정후(永昌亭侯)·진동장군(鎮東将軍)으로 위임되었다. [[227년]], 조운은 [[제갈량]]을 따라 한중에 주둔하고, [[228년]] 제갈량과 함께 위나라로 출병, [[제갈량]]은 사곡도(斜谷道)를 통과한다고 크게 선전하고, 조운과 [[등지]]에게 위나라의 [[조진]]을 상대하도록 명령한 다음 그 틈에 [[기산]]을 공격했다. [[가정 전투]] 에서 [[마속]]의 촉군이 패배 했다.
 
이후 애시당초 의군이었던 기곡의 조운 또한 조진에게 패하였으나 부장인 등지와 함께 손수 후위를 맡아 솔선수범해 피해를 줄였다. 제1차 북벌이 실패로 돌아가고 참전했던 제갈량 이하 모든 장수들이 강등되면서 조운은 진군장군(鎮軍将軍)으로 좌천되었다.
 
제갈량이 “퇴각하면서 장병의 단결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고 묻자, 등지는 “조운 스스로 후방 부대를 맡아 군수 물자를 거의 버리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었으므로 장병들은 흐트러짐 없이 퇴각할 수 있었다” 고 대답했다. 제갈량은 조운에게 남은 군수품 견사(명주실)를 그의 장병들에게 나눠주게 했지만, 조운은 “전쟁에 진 자가 어찌 하사품을 받을 수 있겠는가. 군수 물자는 모두 창고에 모아 10월에 겨울 준비 물품으로 하사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해, 규율을 지켜 패전 책임을 분명히 했다. 제갈량은 이를 보고 "살아 선제께서 말씀하시길 자룡은 군자라 하였는데, 그 말이 헛되지 않도다" 라고하며 더욱 조운을 존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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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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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생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