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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친 김선품이 사망하여 어머니인 보룡궁주가 [[김춘추]] 집안의 유모가 되었다. 이에 김춘추의 장남인 법민과 인연을 맺어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고 [[김법민]]이 태자로 책봉 될 때 그녀 또한 태자비로 책봉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자의왕후의 동생인 [[야명부인]]도 [[문무왕]]의 후궁으로 입궐하여 인명전군을 낳았다.
자의왕후는 문무왕과의 사이에서 [[소명태자]]와 훗날 [[신문왕]]이 되는 정명태자를 낳았다. 문무왕 말기에 정명태자의 장인인 [[김흠돌]](金欽突)이 정권을 장악하여 대립하였다. 신문왕 원년([[681년]])에 김흠돌이 야명궁주 소생인 인명전군을 앞세워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여 김흠돌을 비롯하여 [[흥원]](興元), 진공(眞功 - 제26대 [[풍월주]]), 흠돌의 아들인 흠언(金欽言, 제31대 풍월주), 진공의 아들인 [[신공]](信功 - 제32대 풍월주)와 [[김군관|군관공]], 인명전군을 처형하였다. 이들이 대부분 [[화랑도]] 출신이므로 그녀는 화랑도를 일시 폐지 시키고 이에 소속된 자들을 병부에 소속시키나, 지방까지는 미치지 못하자 다시 부활시켜 풍월주와 국선 이원체제가 아닌 국선 일원체제로 운영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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