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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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이상이 된 [[헨리 6세]]를 요크가의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리처드]]가 섭정하자 이를 위험하게 여긴 왕비가 리처드를 추방하였으나, 그가 돌아와서 장미전쟁이 시작되었다. 랭커스터군은 요크군을 격파하고 리처드가 전사했으나, 아들인 [[에드워드 4세|에드워드]]가 랭커스터군을 이기고 왕위에 올랐다.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리처드]]는 헨리 6세의 발병을 틈타 1453년 호민관 겸 방위관이 되어 랭커스터가의 중심세력인 서머세트 공과 싸워, 장미전쟁을 일으켜 서머세트 공을 멸하였다. 1460년에 리처는 왕위를 요구하고, 헨리 6세의 사후 왕위 계승이 승인되었으나, 랭커스터파의 반대로 리처드는가 전사하였다. 리처드의 아들 에드워드는 1461년 랭커스터가를 격파하고 왕위를 획득하여 [[에드워드 4세]]가 되었다. 이윽고 요크가 내부에 불화가 일어나, 1483년 에드워드 4세의 사후, 글로스터 공(公) 리처드는 어린 [[에드워드 5세]]와 그 아우 리처드를 살해하고리처드가 [[리처드 3세]]로서 즉위하였다.
 
이에 어머니 계통으로 왕실에 연결된 랭커스터가의 유일한 왕위 요구자인 [[헨리 7세|헨리 튜더]]가 1485년 망명지인 프랑스로에서 귀국하여 1485년 [[보즈워스 전투|보스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격파하고 [[헨리 7세]]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장미 전쟁은 끝나고 [[튜더 왕조]]가 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