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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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래 ==
[[가야]]의 [[기문 (옛 지명)|기문]](己汶)지방의 일부인 하기물(下奇物), 백제의 고룡군(古龍郡)이다. 기물과 고룡이라는 이름은 서로 연관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용]](龍)의 순 우리말이 "미르"이므로 둘 다 "고밀Komir"로 개련되기 때문이다.<ref>국사편찬위원회 편집부(1970)한국사 7 (삼국의 정치와 사회3 신라.가야)</ref> 기문지방은 [[우륵의 12곡]]에 나오는 남원시내의 하기물과 지금의 남원시 [[운봉읍]]의 옛 [[모산현]],또는 [[장수군]] 번암면의 [[거사물현]]에 있던 [[상기물]]지역으로 후기 가야세력이 [[호남]] 동부지역까지 진출했음을 시사한다.
남원이라는 이름은 통일신라시대에 [[남원소경]]의 설치 이후이다.
 
== 역사 ==
 
=== 고대 ===
* [[마한]]의 [[고랍국]]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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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세기 전반 [[백제]]와 [[가야]]연맹이 기문지방을 놓고 충돌하였다. [[무령왕]]에 의해 백제는 하기물을 병탄해 [[고룡군]]을 설치하였다.
*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배하였고 향후 3년동안 남원 인근의 [[거물성]](居勿城)에서 백제의 잔여 세력들이 항전했다.
* [[웅진도독부]]에 의해 명목상의 [[행정구]]인 지심주(支심(수변尋)州) 기문현(己汶縣)이 설치되었다.
 
=== 중세 ===
* [[685년]][[신문왕]] 5년 [[보덕국]]의 고구려유민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켜 [[남원경]](南原京)을 설치하였다. 신라귀족 [[옥보고]]가 이곳에서 고구려의 [[거문고]]를 전수받아 이를 개량해 30여곡을 만들었다.
* 고려시대에 [[940년]] [[고려 태조]] 23년 [[남원부]]가 되어 인근 5현을 관할하였다.
 
===근세===
* 조선시대에 [[1413년]] [[조선 태종|태종]]13년 남원도호부로 승격하였다. 남원도호부는 1부 1군 9현( 담양·곡성·창평·구례·순창·임실·무주·진안·장수 등)을 관할하였다.
* [[1457년]] 남원진영이 설치되어 인근6현(곡성·옥과·구례·창평·장수·운봉)을 관할하였다.
* [[1597년]] [[정유재란]]시 [[남원 전투]]로 12000명의 인명손실을 입고 남원성이 함락되어 [[직산 전투]]까지 일본군이 삼남지방을 점령하였다.
* [[1654년]] 전라좌영이 설치되었다.
 
===근대===
* [[1895년]] [[6월 23일]](음력 윤 5월 1일) 전국의 행정체계가 [[23부]]로 개편되면서 이전 전라도 서부지역을 관할하는 [[남원부]]가 실치되어 그 치소가 되었다. 본래의 남원부는 군(郡)이 되었고 남원군을 포함해 16군을 관할하였다.<ref>[[:s:고종실록 32년 5월#음력 5월 26일|칙령 제98호 지방제도개정건]] (1895년 음력 5월 26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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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륵의 12곡]]
* [[고랍국]]
* [[기문 (옛 지명)]]
* [[남원경]]
* [[춘향전]]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