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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이원집정부제}}
 
[[프랑스]]는 [[내각제]]적 요소를 가진 제4공화국에서의 만연한 정치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1958년]] 이원집정부제를 골자로 한 새 헌법을 마련하고,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다. [[1962년]]부터, 프랑스의 대통령들은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가 아닌 직접선거로 선출되어 왔다. 이러한 변화는 제5공화국의 대통령들이 원래 헌법에 규정된 그들의 권한 이상으로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로서의 역할까지 행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물론 여전히 국민회의의의회의 다수당이 갖는 정치적 영향력은 존재하였으나, 국민에 의해 직선된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게 되면서 대통령의 권한은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갈등 국면에서 이전에 비해 우세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힘의 불균형은 제5공화국 들어 대통령이 [[의회해산권]]이란 막강한 권한을 언제건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심화되었다. (단, 그 시행은 1년에 한 번을 넘을 수 없는 등 엄격한 요건이제한이 뒤따른다.)
 
이 체제 하에서,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은 의회의 지지를 받는 총리의 지명이다. 이는 대통령의 정당소속 또는 정파와정당과 의회 다수당 또는 정파가다수당이 동일할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58년 새 헌법 개정의 주역인 [[드 골]]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 선거 직전에 실시된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신 공화국연합(UNR)이 원내 1당이었기1당이 되었던 때문에덕에 그러한 문제를 겪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기가 7년인 데 반해, 의회 의원들의 임기는 5년이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대통령의 소속 정당 또는 정파와 의회 다수당 또는 정파가 다를 가능성은 늘 존재했다.
 
첫 번째 좌우 동거 정부는 [[1981년]], [[사회당 (프랑스)|사회당]] 출신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의 당선과 함께 등장했다. 당시 의회는 우파 연합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취임하자 마자, 미테랑은 의회해산권을 발동하고 새 총선 실시를 발표했다. 새롭게 실시된 총선에서 사회당이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정국은 안정을 되찾는 듯 보였다. 그러나 5년 후에 실시된 총선에서 사회당은 우파 연합에게 과반의석을 내주고 말았고, 이것이 좌우 동거 정부의 첫 시험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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