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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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학자에 따라 [[신라]] [[신라 진흥왕|진흥왕]] 16년(
[[진흥왕]]이 새로 공략한 국경지대를 순시한 다음 세운 기념비이다. 진흥왕은 [[백제]]의 영토인 한강 중류지대를 차지하고, [[고구려]] 땅인 [[함주군|함주]](咸州)·[[리원군|이원]](利原) 근방까지 정복하여 신라 최대의 영토 확장에 힘썼는데, 이를 기념하고자 순시(또는 순수)한 곳마다 기념비를 세우게 하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순수비로는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창녕비]](昌寧碑)·북한산비(北漢山碑)·[[황초령 진흥왕 순수비|황초령비]](黃草嶺碑)·[[마운령 진흥왕 순수비|마운령비]](摩雲嶺碑) 등 4개가 있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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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조선 시대]]에는 [[무학|무학대사]]의 비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1816년에 [[김정희]]는 김경연과 함께 비문을 탁본하고, 이듬해에 [[조인영]]과 다시 비봉에 올라가 조사한 뒤, 진흥왕의 순수를 기념한 것임을 확인했다.<ref>{{서적 인용 |저자=조인성 |총서=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권=1 권 - 신라사 총론 |제목=신라사 연구의 진전 |쪽=177 |연도=2016 |url=http://gb.go.kr/open_silguk/silla_history/about.do |isbn=978-89-6176-190-1}}</ref>
비의 옆면에 김정희와 [[조인영]]이 답사하여 판독한 사실이 새겨져 있으며,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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