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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도간혹있다.그건기성세대의발악의악순환)
[[한국]]에서는 유교적인 풍습에 따라 머리를 깎지 않았으나, 조선 후기인 [[1895년]]에 근대화를 위한 [[단발령]]이 선포되었다. 고종이 대머리라는 설이 있다. 대대한민국에서는 1970년대에 풍기 단속을 위하여 남자의 장발을 제한했으나 80년대에 와서 없어졌다. 1980년대 초반 청소년의 두발 자유화를 시행하였으나 점차 학교별로 규정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 장단점과 시행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 중이다.
수[[고려|려]]활어[[충렬왕|렬]]타은쵝신하!
 
[[고려]] [[충렬왕]]은 신하와 백성들이 몽고식의 변발을 할 것을 요구하여 백성들이 반발하였다. 변발 강요는 [[공민왕]] 때까지 계속되었다. [[청나라]]에서도 [[한족]]에 변발을 강요하여, 장발이 저항의 의미로 여겨지기도 했다.
== 응 아니야 ==
[[고려]] [[충렬왕]]은 신하와 백성들이 몽고식의 변발을 할 것을 요구하여 백성들이 반발하였다. 변발 강요는 [[공민왕]] 때까지 계속되었다. [[청나라]]에서도 [[한족]]에 변발을 강요하여, 장발이 저항의 의미로 여겨지기도 했다.
 
[[조선]]에서는 [[1895년]], 고종이 낡은 관습을 버리는 의미에서 스스로 머리카락을 깎고 신하와 백성들이 따를 것을 요구하는 단발령(斷髮令)을 내렸다.<ref>《고종실록》, 권33, 32년 11월 5일 기사</ref> 이는 1894년의 변복령(變服令)에 이은 것으로, 반일의식과 전통문화 파괴에 대한 우려로 일반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청나라]]는 [[1911년]] [[신해혁명]] 때에 단발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