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리나 스포르차 디 포를리 백작부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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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년]] 그녀는 [[교황 식스토 4세]]의 조카 [[지롤라모 리아리오]]와 약혼함으로써 [[이몰라]]의 소유권을 되찾았으며, 그 도시는 리아리오 가문의 봉토가 되었다. [[1477년]] 이몰라에 의기양양하게 들어간 후, 카테리나 스포르차는 [[프란체스코 5세 오르델라피]]로부터 포를리의 지배권을 빼앗고자 남편과 함께 [[로마]]로 가서 [[교황]]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리아리오는 외삼촌인 교황의 총애를 통해 교회군 총사령관과 [[산탄젤로 성]]의 대리 성주라는 칭호를 얻어 군사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었으며 많은 범죄 술수를 통해 큰 부를 축적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1484년 8월에 식스토 교황이 선종하자 그는 카테리나를 로마로 보내 산탄젤로 성을 차지하도록 하였으며, 그녀는 10월 25일 추기경단이 남편의 요구를 관철할 때까지 용감히 성채를 방어하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봉토인 이몰라와 포를리의포를리 시민들의 호의를 얻고자 웅장한 공공건물과 성당의 건립과 조세 폐지를 통해 노력하였지만, 오래가지 않아 국고가 바닥나면서 다시 예전처럼 강제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정책으로 돌아갔다. 이런 실책으로 말미암아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민심은 전보다 더 멀어졌다.
 
리아리오의 적대자인 [[교황 인노첸시오 8세]]의 사생아이자 이몰라와 포를리의 대리 영주 [[프란체스케토 치보]]가 그에 반대하는 음모를 꾸몄다. 그 결과 리아리오는 모든 사람들의 배신을 의심하여 탄압적 체계를 세우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1488년 그는 세 명의 음모자에 살해당하였으며, 그의 궁전은 약탈당하고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포로 신세로 전락하였다. 공모자의 우두머리는 포를리의 귀족 집안의 일원인 오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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