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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시대 봉암사(鳳巖寺) 정진대사탑비문(靜眞大師塔碑文)에서 '문무양반(文武兩班)'을 '문호양반(文虎兩班)'이라고 썼다. 이것은 [[고려 혜종]]의 휘 "무"(武)를 피하기 위해 "호"(虎)를 썼기 때문이다. 중국 [[황제]]가 아닌 한국 [[왕]]의 [[휘]]를 피한 기록은 이것이 처음이다.
* [[고려]] 시대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고려 정종 (3대)|고려 정종]]의 휘 요(堯)를 피하기 위해 고(高)라고 표기하였으며, 고려 혜종의 휘 무(武)를 호(虎)로 바꿔 기록하였다.
* [[고려]] 말 [[충선왕]]이 즉위함에 따라 경상도의경상도 한 현의장산현(章山縣)을 이름을 '[[경산현]] (慶山縣)'으로 개명했다고쳤다.
* [[조선]] 시대 [[대구광역시|대구군]]의 한자 이름은 원래 ‘大丘’였으나 공자의 휘 ‘구(丘)’를 피하기 위해 ‘大邱’로 바뀌었다. [[1750년]] 대구의 유생(儒生) [[이양채]](李亮采)가 공자의 휘가 ‘구(丘)’이므로 ‘大丘’를 ‘大邱’로 바꾸어달라고 상소했으나 [[조선 영조|영조]]의 윤허를 얻지 못했다.<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ua_12612002_002&tabid=k 조선왕조실록 영조 26년 12월 2일]</ref> 그러나 [[조선 정조|정조]] 때부터 점차적으로 ‘大邱’라는 지명을 쓰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오늘날 [[대구광역시]]의 한자 표기 역시‘大邱廣域市’이며, [[대구역]]과 [[동대구역]]은 각각 大邱驛, 東大邱驛으로, [[대구선]]은 大邱線으로 쓴다.)
* 조선 시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 [[청나라]] 고종(高宗) [[건륭제]]의 휘 홍력(弘曆)을 피하여 홍례문(弘禮門)의 이름을 [[경복궁#흥례문(興禮門)|흥례문]](興禮門)이라고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