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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에 걸쳐 [[갠지스 강|갠지스강(江)]] 유역은 샤이슈나가 왕조가 지배하는 [[마가다|마가다국(國)]]에 의하여 통일되었다. 그 후 기원전 4세기 초에 샤이슈나가 왕조가 무너지고 난다 왕조로 바뀌었으나 마가다국의 번영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한편 인더스강 유역은 기원전 518년경 [[아케메네스 왕조의제국|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다레이오스) 1세에1세]]에 정복되어 이후 페르시아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전해진 페르시아 문화는 다시 동쪽의 갠지스강 유역에서 번영하고 있던 인도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무너뜨린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27년부터 기원전 325년에 걸쳐서 인더스강 유역에 침입하여 그 후 얼마 동안 이 지방은 그리스 세력권에 들게 되었다.

갠지스, 인더스의 두 강에 걸친 통일제국을 건설한 것은 마우리아 왕조의 창시자인 찬드라굽타이다[[찬드라굽타]]이다. 그는 마가다국의 지배권을 난다 왕조로부터 빼앗자 즉시 서북 인도의 그리스 세력을 일소하고, 이어 남부 데칸 지방의 정복에 힘을 기울였다. 마우리아 왕조는 제3대 아소카왕(王)[[아소카]] 왕 시대에 최성기를 맞아서 그 지배는 인도 대륙의 거의 전역에 미쳤다. 마우리아 제국은 중앙 직할령과 속주로 나뉘었고 각 주에는 중앙에서 왕자나 대신이 파견되어 통치를 담당하였다. 통일제국의 출현에 의해서 국내 교통이 원활해졌고, 경제·사회·문화의 각 방면에 있어서 전국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 문화적 후진 지대였던 남부 인도는 이 시대에 북쪽으로부터 자극을 받아서 문화 발달이 촉진되어, 마우리아 제국 쇠퇴 후에 있어서의 안드라 왕조의 번영을 보게 되었다.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했던 이 왕조도 아소카의 죽음 후 쇠퇴의 길로 향하여, 기원전 187년경 슝가 왕조의 창시자인 푸샤미트라에 의해서 무너지고 인도는 다시 정치적 분열의 시대로 들어갔다.
 
=== 진의 중국 통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