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르시리다르 빌레그트 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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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종 아유르시리다르'''(元 昭宗 愛猷識理答臘, [[1338년]] [[1월 23일]] ~ [[1378년]] [[5월]], 재위: [[1370년]] [[5월 23일]] ~ [[1378년]] [[5월]])은 [[북원]]의 제2대 황제이며 [[원나라]]로는 12대 황제,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는 17대 대칸이다. 휘는 '''보르지긴 아유르시리다르'''({{한자|孛兒只斤愛猷識理答臘|패아지근애육식리답랍}})이다. [[원 혜종몽골]] 장남이며재위명은 어머니는'''빌레그트 [[고려]]칸'''(必里克圖汗)이고, 출신시호는 [[기황후]]'''무승화효황제'''(武承和孝皇帝)이다.
 
그 역시 [[고려]] 출신 여성 [[권황후|권씨]](權氏)와 김씨(金氏)를 맞이하여 황후로 삼았다. [[몽골]]식 재위명은 '''빌레그트 칸'''(必里克圖汗)이고, 다른 묘호는 '''철종'''(哲宗), 시호는 '''무승화효황제'''(武承和孝皇帝)이다.
 
== 생애 ==
=== 생애 초반 ===
[[1353년]]에 황태자가 되었다. 이후 [[1364년]] 볼루드 테무르는 다통에서 [[대도]]로 진군하여 칸 휘하의 중앙정부를 장악하였다. 황태자 아유르시리다르는 [[타이위안]]으로 달아나 코케 테무르의 지지를 구하였다. [[1365년]] 황태자는 코케 테무르와 함께 볼루드 테무르를 공격했고, 볼루드 테무르는 부하에게 배반을 당한 뒤, 코케 테무르에게 사살되었다.
아유르시리다르는 [[원 혜종]]과 [[기황후]]의 아들이며, [[1353년]]에 황태자가 되었다. 기황후는 고려 출신 환관 [[박불화]](朴不花)를 이용하여 혜종이 아유르시리다르를 황태자로 책봉하도록 압박하였다.
 
몽골은 [[고려]]를 병합하지는 않았지만,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奇轍)이 왕권을 압박하자 고려의 [[공민왕]](恭愍王)은 [[1356년]] 일격에 기씨일족을 멸하였다.
 
=== 황태자 시절 ===
[[1364년]] 기황후는 [[덕흥군 (고려)|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세우고 고려로 군대를 보냈다. 그러나 이는 [[압록강]]에서 고려 군대에 격파되었다.
 
그때 황태자의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에 내전이 있었고, 황태자에게 반대하던 파의 지도자 볼루드 테무르는 결국 [[1364년]] 수도를 점령하였다. [[1364년]] 볼루드 테무르는 다통에서 [[대도]]로 진군하여 칸 휘하의 중앙정부를 장악하였다. 아유르시리다르는 지지자인 [[코케 테무르]]에게 달아났지만, 그의 어머니인 기황후는 볼루드 테무르의 포로가 되었다.
 
황태자 아유르시리다르는 [[타이위안]]으로 달아나 코케 테무르의 지지를 구하였다. [[1365년]] 황태자는 코케 테무르와 함께 볼루드 테무르를 공격했고, 볼루드 테무르는 부하에게 배반을 당한 뒤, 코케 테무르에게 사살되었다.
 
[[기황후]]는 코케 테무르의 지지를 통해 아유르시리다르를 황제로 즉위시키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제1황후였던 [[바얀 후투그]]가 죽은 후에 기황후는 제1황후가 되었다.
 
코케 테무르는 원나라 군대에게 반원 반란군에 대한 공격을 명했지만, 그를 초창기부터 따르던 중국인 장교를 포함한 장교단에 의해 배반을 당했다. 그리고 이때 아유르시리다르는 코케 테무르를 실각시킨다.
 
그리고 [[1368년]], 원나라는 [[대도]]에서 퇴각함으로써 중국에서 물러나고 [[북원]]으로 전락한다.
 
=== 북원 황제 ===
[[1370년]] [[원 혜종|혜종]] 토곤 테무르가 사망하고 아유르시리다르는 몽골고원의 [[카라코룸]]에서 황좌를 계승했다. 실각당했던 [[코케 테무르]]는 새로운 [[북원]] 황제의 세력에 참여해서 황제의 호위를 수행하였다. 코케 테무르가 이끄는 북원의 군대는 [[1372년]], 사막에서 서달(徐達)이 이끄는 명군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 명군이 2만 명 정도 피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간쑤성에서 다시 서달과 대적할 때 북원군은 심하게 몰려서 고비 사막으로 달아나야 했다.
 
코케 테무르는 북원군을 거느리고 다시 중국으로 진군하였고, 북원의 영향력을 [[산시 성 (산서성)|산시성]](山西省)까지 팽창시켰다. 그러나 그는 [[1375년]] 사망하고 말았고, [[1378년]]에는 황제 아유르시리다르도 사망하였다. 그들의 죽음 이후에 북원은 급격히 힘을 잃었고, 중국 진출을 단념해야 했다.
 
== 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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