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보두앵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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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년]] 볼로뉴의 보두앵이 보두앵 1세로 고드푸루아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국왕이되자 보두앵 2세는 [[에데사 백국]]의 백작위를 받았다. 이듬해 그는 마라티아의 영주 가브리엘의 딸 모르피아와 결혼했다.
 
[[1104년]] [[셀주크 투르크]]가 에데사 백국을 공격했는데 보두앵은 안티오키아 공국의 도움을 받았지만 하란 전투에서 패하여 셀주크의 포로가 되었다. 그 사이 [[보에몽 1세|보에몽]]의 조카인 [[탕크레드 (십자군)|탕크레드]]가 에데사 백국의 섭정이 되었다. 보두앵은 [[1108년]] 몸값을 치르고 풀려났지만 탕크레드는 에데사를 넘겨주길 거부했고 보두앵은 몇몇 이슬람 제후들과 연합하여 탕크레드와 싸워 결국 탕크레드를 축출했다. 그러나 1110년까지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영토 대부분은 [[모술]]의 이슬람 세력에게 빼앗겼다.
 
[[1118년]] 예루살렘의 보두앵 1세가 죽자 보두앵은 그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왕국의 왕으로 가게 되었고 에데사는 [[에데사의 조슬랭 1세|조슬랭]]에게 넘어갔다. 그 무렵 [[팔레스타인]]에는 기독교인 순례자를 돕고 보호하기 위해 [[종교기사단]]이 생겨났는데 [[1113년]] [[몰타 기사단|병원기사단]], [[1118년]]에는 [[성전 기사단]]이 창립되었다. 보두앵은 성전 기사단의 본부를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 근처로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이 기사단의 이름이 성전 기사단이 되었다.
 
보두앵은 [[1124년]]에는 [[투르크족]]에게 붙잡혀 인질이 되기도 했으나 곧 풀려나서 성전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의 도움으로 왕국의 영토를 넓히고 [[1129년]]에는 성전 기사단의 도움으로 [[다마스쿠스]]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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