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 다다사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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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초]] 7년, [[아이즈 번]]주 [[가모 히데유키 (1583년)|가모 히데유키]](蒲生秀行)의 적자로 태어났다. 게이초 17년([[1612년]]), 아버지 히데유키가 사망하자 겨우 10세의 나이로 번주직에 올라, 아이즈 번 60만 석의 당주가 되었다. 그러나 즉위 후, 후견인이자 어머니인 [[후리히메]]가 가로 [[오카 시게마사]]와 번 통치를 놓고 분쟁을 일으켰고, 결국 오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명에 따라 할복하게 된다. 이후 중신들의 대립까지 겹쳐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치안은 제대로 유지되지 못했다. 끝내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다다사토는 [[간에이]] 4년(1627년)에 2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가모 가문은 단절될 위기에 놓였으나, 어머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딸이라는 점에서 영지 몰수로 이어지지 않고, [[가미노야마 번]]주였던 동생 [[가모 다다토모|다다토모]](忠知)가 그 뒤를 이어 [[이요 마쓰야마 번]] 24만 석 영지로 옮겨가게 되었다. 아이즈로는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가 40만 석 영지를 받아 들어왔다.
 
{{전임후임|
|전임자=[[가모 히데유키 (1583년)|가모 히데유키]]
|후임자=[[가모 다다토모]]
|직책=[[가모 씨|가모 가문]] 당주
}}
{{전임후임
|전임자=가모 히데유키
|후임자=[[가토 요시아키]]
|직책=[[아이즈 번]] 번주 (가모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