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과학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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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kyu Kim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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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
==== 유리시스템즈 ====
1992년, 타 시스템간의 능률적 전기 의사소통에 대한 연구를 위해 본인 딸의 이름을 따 유리시스템즈(Yurie Systems)를 설립하게 된다. 그는 군에서 사용될 수 있는 강력한 야전 시스템에 걸쳐 음성, 자료와 영상의 전송을 허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기간은 김종훈의 기업가적 위험 감수의 절정을 보여주었는데, 자택을 담보로 4십만 달러를 빌렸고, 그의 신용카드를 최대 한도로 쓰기도 했다. 곧 무선 장치를 위한 [[비동기 전송 방식]] 스위치 개발을 이끌었다. 김종훈은 그의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회사로선생님을사로 모시기도 하였으며, 전 미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를 이사로 영입하였다. 이내 방위 계약에서 상용에 비동기 전송모드(ATM)의 표준을 지렛대로 삼는 것에 대한 잠재성을 인정 받으면서, 1997년까지 그는 기술 기업가들 사이 가장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러한 유리시스템즈를 본 한국의 모 대기업은 한국인이 대표로 있는 작은 미국 기업을 어떻게 믿겠느냐며 무시한 일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회사는 매우 성공했으며, 1998년, [[루슨트|루슨트 테크놀로지 (Lucent Technologies)]]에 11억 달러에 매각한다. [[1998년]], 포브스지는 미국 400대 갑부에 김종훈을 선정하였으며, 당시 그의 재산은 5억 6천만달러, 한화 약 6천 600억원이었다. [[1999년]] [[포춘 (잡지)|포춘]]이 발표한 "미국 40세 이하 부자" 랭킹 선정 당시 재산은 약 4억 3천만달러, 한화 5천 200억원이었다. 그는 회사 매각 당시 임직원들에게 주식의 40%를 나눠주었고, 이에 20명 이상의 직원이 백만장자 반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다 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훌륭한 팀워크만이 성공의 길이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