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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대한민국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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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愛國歌)는 [[대한민국]]의대한민국의 국가이다. 가사의 작사자는 [[윤치호]], [[안창호]]이고, [[1919년]] [[안창호]]에 의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에 삽입해서 부르기 시작하다가 [[1935년]] 한국의 작곡가 [[안익태]]가 지은 《[[한국환상곡]]》에 가사를 삽입해서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
 
가사의 작사자는 [[윤치호]] 설, [[안창호]] 설, [[윤치호]]와 [[최병헌]] 합작설 등이 있다. [[윤치호]]의 작사설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애국가를 바꾸려 하였으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변호로 계속 애국가로 채택하게 되었다.<ref name="aegukga">[http://search.ytn.co.kr/ytn/view.php?s_mcd=0106&key=200604071715441914&q=%C0%B1%C4%A1%C8%A3 "애국가 수정·교체 주장은 부당"] YTN 2006년 04월 7일자</ref> 이후 [[1948년]]의 정부 수립 이후 국가로 사용되어 왔으며, 2010년 [[국민의례규정]]에서 [[국민의례]] 시 애국가를 부르거나 연주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로서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다.<ref>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규정한 법적 근거는 없으나 관습상 인정된다고 밝혔다.</ref><ref>http://www.mcst.go.kr/servlets/eduport/front/upload/UplDownloadFile?pFileName=%EB%B3%84%EC%B2%A8-%EC%A0%95%EB%B6%80%EC%83%81%EC%A7%95+10%EB%AC%B8+10%EB%8B%B5.hwp&pRealName=20160315125627415164517788_TCS_SCHMNG201603150113475461.hwp&pPath=030200000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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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Yun Chi-ho's Aegukka.gif|thumb|210px|left|[[1945년]] [[7월]]경 [[윤치호]]가 셋째 딸 [[윤문희]]에게 전해준 [[애국가 (대한민국)|애국가]] 필사본]]
 
[[윤치호]]의 사촌동생 [[윤치영]](尹致瑛)에 의하면 [[윤치호]]가 [[대한민국]]의대한민국의 [[애국가 (대한민국)|애국가]]를 일부 작곡했다고 한다.<ref name="0애국가1">http://www.ilyosisa.co.kr/ILYO-1/214/news/special/2141502.html</ref> [[윤치영]]에 의하면 애국가 가사의 앞부분은 [[최병헌]] [[목사]]가 짓고, 후렴구는 윤치호가 지었다는 것이다. [[최병헌]] 목사는 윤치호가 다니던 [[정동감리교회]]의 목사였다.<ref name="0애국가1"/> 윤치호와 최병헌이 함께 지었다는 애국가 사본이 [[2002년]] 한남대학교 교수 박정규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윤치호의 ‘무궁화 노래’(1896)와 김인식의 ‘코리아’(1910)가 합쳐진 형태로, 후렴이 현재의 애국가와 같다.<ref name="shin">[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2/27/2006022770503.html 단재 한시·'항일가사집' 첫 공개] 조선일보 2006.02.27</ref> 또한 애국가의 원본은 그가 지었으나,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부 개사했다고도 한다.
 
그밖에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로 시작되는 협성회 무궁화가 역시 윤치호가 작사를 하였다는 설이 있다.<ref>[http://www.media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48934 애국가에 대한 소고] 미디어제주 2008년 08월 28일자</ref> [[윤치호]]가 지은 노래 중 안창호가 가사의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를 문제삼아 가사를 바꾸라고 요청하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으로 고쳤다. 그러나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안창호]]는 윤치호가 지었다가 본인 스스로 수정한 부분 중에서도 우리 대한 만세를 우리 나라 만세로, 이기상과 이맘으로 임금을 섬기며를 이기상과 이맘으로 충성을 다하며로 [[안창호]]가 다시 고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