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153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오류를 고침
태그: m 모바일 웹
→‎조선통신사: 내용을 부연함.
태그: m 모바일 웹
32번째 줄:
:"나도 어찌 왜적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불안에 휩싸일까봐 그런 것입니다."
 
이와 같은 김성일의 보고에 서인 황윤길을 비롯해, [[조헌]] 등이 기필코 왜적이 침입할 것리고 주장하였지만, "서인(西人)들이 세력을 잃었기 때문에 인심을 요란시키는 것이다"라고 매도 하여 배척하였으므로, 조정에서는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볼 때 당시 김성일,류성룡등 동인이 정국 줃동였음을주동이였음을 알수 있다.<ref>{{웹 인용
|url = 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nb_12403001_003&grp=&aid=&sid=2123&pos=3
|제목 = 통신사 황윤길 등이 왜 사신 평조신 등과 돌아오다
46번째 줄:
 
실제 황윤길의 발언이 있은 직후 조정은 각지에 성을 쌓고 장정들을 징집하는 등 급작스런 대비책을 강구하였는데, 이는 당시 민심을 상당히 동요시켰다. 이에 [[상소]]를 올려 오늘날 두려운 것은 섬나라 도적이 아니라 민심의 향배이니, 민심을 잃으면 견고한 성과 무기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여 내치에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즉 표방한 바의 참 목적은 "백성의 민심을 동요 시키지 않는" 거였다지만, 이는 "대비 안하더라도 일단 백성 마음 편한 것이 대비해서 백성들 목숨 잃지 않게 하는 것보다 우선"이라는 우선순위가 도착된 논리에 다름 아니며 본말전도의 변명임은 분명하다.
 
[[1591년]](선조 24) 종계변무가 성사되자 학봉은 [[광국공신|광국]][[원종공신]] 1등에 특별히 책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