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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정난의 변}}
[[1398년]] [[홍무제]]가 죽었다. 뒤이어 즉위한 [[건문제]]는 자신의 숙부들을 견제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할아버지인 홍무제 제위 중 황실을 보호할 울타리로써 홍무제가 자신의 아들들을 변경의 왕으로 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경의 군왕세력은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건문제에게 큰 부담이 되었으며, 따라서 건문제는 황제로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하기 위해서 이른바 '제후왕 영지 삭감 정책'을 펼쳤다. 이에 당시 홍무제의 아들들 중 가장 연장자이며 세력이 강대한 연왕 [[영락제|주체]]가 수반이 되어 [[1402년]] 군사를 일으키니 이를 '[[정난의 변]]'이라고 한다.
 
1398년 여름에 홍무제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자신이 황실의 어른임을 생각하여 새로 황제가 된 조카 건문제(建文帝)에게 정중하게 대접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건문제는 숙부들을 대접하기를 거절했고, 오히려 숙부들을 압박하였다. 그리고 그는 정변을 계획하였다.
 
[[1402년]] 주체는 수도 [[난징]]을 점령하고 건문제에게서 제위를 찬탈하여 스스로 황제에 즉위했다. 그가 바로 명조(明朝) 제3대 황제 성조 영락제(永樂帝)였다. 영락제는 즉위 이후 얼마간 난징에서 머물다가 자신의 정치 기반인 [[베이징]]으로 수도를 천도하였다. 이로인해 다시 중국의 정치중심지는 베이징이 되었다. 영락제의 베이징 천도는 그가 북방의 군사력을 온전히 장악하게 되었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강남지방의 경제력을 화북지방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중국의 경제적 통일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