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앙 (포르투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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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앙 3세가 승하하여 세바스티앙이 즉위한 후도, 포르투갈의 해외 영토는 확장을 지속하였다<ref name="abe136"/>. [[1559년]]에 포르투갈군은 인도 서해안의 [[다만]]의 재정복에 성공한다. 1567년에 브라질 총독 Mem de Sa가 남아메리카의 리우 데 자네이루 만에서 [[프랑스 왕국|프랑스]]군을 격퇴, 요새를 점령한다. 요새는 식민지로 재건되어 후의 [[리우 데 자네이루]]로 발전한다. 1570년에는 [[앙골라]]의 식민지화를 개시하였다. 1562년에 모로코, [[1570년]]에 인도의 [[고아]], [[체울]]이 공격을 받지만, 방위에 성공하였다.
 
==세바스티앙주의==
==세바스티앙 주의==
[[1580년]]으로부터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의 지배하에 놓여져 곤궁해진 민중은 구세주의 출현을 열망하고 있었다<ref name="zusetsu57">금7 「그림 해설 포르투갈의 역사」, 57 페이지</ref>. [[1530년]]에 신발 가게의 반다라가 쓴 숨은 왕이 민중을 해방한다는 예언시에 세바스티앙을 적용시켜 세바스티앙은 전사하고 있지 않고, 패배를 수치스럽게 여기어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믿게 된다. 민중은 세바스티앙의 귀국을 믿어 각지에 세바스티앙을 사칭하는 자들이 다수 나타났다<ref name="zusetsu57"/>.
 
[[세바스티앙 주의세바스티앙주의]](메시아 대망론)는 에스파냐 지배를 끝내는 민중의 반란의 원동력이 되어, [[브라간사 왕조]]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용되었다<ref name="zusetsu57"/>.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