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바뀜

2 바이트 제거됨 ,  2년 전
그 후 학업에 열중하던 하춘화는 은퇴 선언 2년 만인 [[1981년]]에 가수로 복직하였는데 가수로 활동하면서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놓지는 않았다고 한다. 가수로 복직한 뒤에는 슬픈 감정과 느린 템포의 곡《우리 사랑 가슴으로》(작사: 이성만/ 작곡: 이범희)가 히트하였고 [[1983년]]에 자신의 무대의상 150벌을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어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이로인해 대중들로부터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가수였던 하춘화는 [[1985년]]에 남북 예술인 교환공연시 남측 여자가수 대표로 3박 4일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직할시|평양]]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990년 대 부터1990년대부터 하춘화는 [[1989년]]에 발표된《날 버린 남자》(작사: 박정환/ 작곡: 박성훈)가 국민들에게 대중적으로 널리 인기를 얻으며 또 다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1991년]]에 총공연 횟수 8000회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최다 개인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록되었다. [[1992년]]에는 대중 가수로서는 세 번째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인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기존의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던 하춘화는 [[2002년]]에는 빠른 템포의 트로트《연하의 남자》(작사: 김홍조/ 작곡: [[박현진]])를 부르며 활동할 당시 자신만의 댄스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학업에도 열중하여 [[1994년]]에 [[고려대학교|고려대 자연자원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하고 나서 [[1998년]]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한국방송통신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였다. [[2000년]]에는 [[동국대학교|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가요의 원류와 변천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공연예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지난 [[2006년]] [[8월 25일]]에 [[성균관대학교]]에서 현대 대중가요 역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예술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박사 학위를 소지한 최초의 대한민국 [[가수]]가 되었다.
 
하춘화는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공식 은퇴를 선언하였으나 [[2007년]]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2년]]에는 [[이호섭]]과 함께 부른 〈휘뚜루 마뚜루〉 를 발표하였다. 이는 30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듀엣 곡이다. 하춘화는 만 6세라는 어린 나이에 활동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현재 자신이 부른 취입곡은 [[이미자]], [[나훈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약 2,400 여 곡 정도 추정되며, 드라마 주제가는 약 60여곡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꾸준히 많은 무대와 공연에 참석하여 현재 8,500회의 공연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명실상부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며 50여년의 긴 활동기간과 박사 학위를 가졌다는 독특한 이력 또한 대중의 이목을 끌고 있다. [[2011년]]에는 데뷔 50주년을 맞아〈하춘화와 함께하는 콘서트〉를 개최하였으며, 이 콘서트에서 벌어들인 200억원을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하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최근에는 데뷔 55주년 기념 〈나눔·사랑 콘서트〉를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