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지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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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에서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연의 《삼국유사》외에는 고대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온조왕]] 26년([[9년|서기 9년]])에 마한이 백제국에게 정복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중국 사서의 기록에 마한 및 목지국이 이후에도 계속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기록은 후대의 사건을 소급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한의 중심 세력이 목지국에서 백제국으로 바뀐 것은 보통 [[고이왕]] 무렵인 것으로 추측되나, 목지국이 실제로 사라진 것이 이 시기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충청남도]] [[삽교읍]] 성리는 옛 [[마한]]의 성터가 있었던 곳이라고 정해진다. 실제로 이 곳에서 마한시대부터 내려오는 [[고인돌]]들과 수 많은 마한 유적들이 출토된다.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의 기록에 따르면, [[근초고왕]] 24년([[369년]])에 왕이 나주, 강진, 보성 등 전라남도 남부의 여러 지역을 공격하여 [[마한]]이 완전히 병합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기록 때문에 그 당시 목지국의 중심지가 현재의 [[전라남도]] 지역에 있었다거나, 백제의 성장에 따라 목지국이 원래 중심지였던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일대에서 남쪽으로 밀려나 청동기 유물이 비교적 풍부하게 발견되는 [[금강]] 유역의 [[전라북도]] [[익산시]], [[영산강]] 유역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으로 이동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