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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 (이름)|자(字)]]는 '''웨이팅'''({{zh|t=慰庭|p=wèi tíng}})이며 [[호 (이름)|호(號)]]는 '''룽안'''({{zh|t=容庵|p=róng ān}})이다.
 
[[청나라]] 말기에서 [[신해혁명]] 직후까지 중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조선]]과도 관계가 깊어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주재하면서 [[광서제]]를 대신함으로 내정 간섭을 수행하였다. 청일전쟁 발발 직전 도주후도망치듯 귀국한 이후, 청나라 군대의 신식군대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귀국 후 무술변법을 계기로 청나라의 실권을 차지하였다. [[쑨원]]과의 대타협으로 [[푸이|선통제]](宣統帝)를 제위에서 끌어내려 중국 이천 년의 제국사에 종지부를 찍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1912년]] [[1월 1일]] [[중화민국]] 성립 후 같은 해 [[4월]] 쑨원 임시 대총통으로부터 [[권력|실권]]을 위임받았고 이듬해 [[1913년]] [[4월 1일]] 쑨원과의 약정에 따라 대총통직을 넘겨받아 [[중화민국의 총통|임시 대총통]]에 올랐다. 하지만 제위의 욕망이 있던 그는, 만년에 스스로 황제가 되기 위하여 [[중화제국]] 제제운동(帝制運動)을 일으켜 칭제를 감행하였으나, 중국 전체에서 "토원(討袁)"의 깃발이 세워지자 이내 제위를 포기한다. 이후 얼마 안가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이 제제운동은 지방 군벌의 세력이 중앙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군벌 세력으로 움직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군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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