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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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소련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스트라빈스키]]는 [[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률을 배우다가, 1903년 [[독일]]에서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만난 후 음악에 뜻을 두고, 그에게서 작곡 개인지도를 받았다.
 
[[1908년]] [[관현악]]곡 《불꽃》으로 러시아 발레단의 디아길레프에게 인정을 받고, 그의 의뢰로 발레곡 《불새》(1910), 《페트루시카》(1911)를 작곡하여 성공을 거둠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913년]] 발표한 《[[봄의 제전]]》으로 파리악단에서 찬반 양론의 소동이 일어났으며, 이 곡으로 당시 [[전위파]] 기수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조국을 떠난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신고전주의 작풍으로 전환하였는데, 이 시기의 작품으로 《[[풀치넬라 (발레)|풀치넬라]]》(1920)가 있다. 그리고 [[고전 시대 음악|고전 시대]]와 [[바로크 시대 음악|바로크 시대]] 음악의 정신을 부흥시키려고 한 음악풍조는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유럽 음악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는 이 시기의 풍조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1934년 프랑스에 귀화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45년 미국으로 망명, 귀화하여, 한때의 침체기를 거쳐 《3악장의 교향곡》(1945)과 《미사》(1948) 등으로 재기, 다시 제2의 전기(轉機)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말년에는 [[종교음악]]에 관심을 두어 《설교, 설화 및 기도》(1961),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1963), 합창곡 《케네디의 추억을 위하여》(1965) 등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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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1948)
* 《[[장송적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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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882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