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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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반대 및 이신론적 믿음: [최고 존재의 제전]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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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이었다가 [[이신론]]으로 견해를 수정한 그는 [[무신론]]에는 반대하였다. [[자크 르네 에베르]]는 성직자 계층 역시 봉건제도의 주요 지지자임을 거듭 반복하였다. 로베스피에르는 미신적인 신앙은 비판하였지만 신의 존재는 확신하였다. 신의 존재를 믿던 그는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자크 르네 에베르]]에게 반감을 갖고, 서로 감정적으로 갈등하였다.
 
루소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루소 식의 이신론자(理神論者)가 되었지만 그는 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反) 그리스도교 운동과 이성숭배라는 '가면무도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1793년]] [[5월]] 로베스피에르는 [[국민공회]]에 제출한 한 보고서에서 신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성을 긍정하였다. 로베스피에르는 점차 혁명 세력과 국민들을 하나의 시민종교, 그리고 절대적 존재에 대한 신앙심으로 단결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1793년]] [[6월 8일]] 국민공회 의장으로서 그가 튈르리 공원에서 [[최고 존재의 제전|최고 존재를 기리는 제전을제전]]을 벌였는데, 이는 그의 적들에게 그를 공격할 또다른 무기를 제공한 셈이 된다. 가톨릭,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새로운 사이비 종교를 창설하려 한다고 비난을 받았고, 무신론자들에게는 종교세력과 야합하려 한다는 비난이 가해졌다.
 
=== 기회의 평등권 보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