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셀리누 쿠비체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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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미나스제라이스 주]] [[지아만치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보헤미아]]([[체코]]) 출신으로, 지아만치나 초기 개척자 중 하나였으며, 쿠비체크라는 성도 그에 유래한다.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프랑스]] [[파리 (도시)|파리]]로 건너가 외과 전공 과정을 밟았다.
 
브라질로 돌아와 군의관으로 재직하다가 정계에 입문, 미나스제라이스 주 대표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벨루오리존치]] 시장으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재직 중 인공호수 [[팜풀랴 호]]의 건설 등 성공적인 도시 기반 시설 확충으로 주목받았다. [[1950년]] ~ [[1955년]]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로 재직하며, 사회간접시설 확충, 공장 설립 등에 주력했다.
 
[[1955년]] 사회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50년의 진보를 5년에'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규모 내륙 개발 계획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다. 그 이듬해 초 취임한 후 곧 [[브라질 고원]]의 광대한 미개척지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 일대 횡단 도로를 개설하고, 농토를 개척하였으며, 그의 재임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인 신행정수도 [[브라질리아]] 건설을 단행했다.
 
기존 수도인 [[리우데자네이루]]의 기득권 세력의 큰 반발에도 단기간에 수도 건설 계획을 실행하여, [[1960년]] 수도를 브라질리아로 옮겼다. 그러나 막대한 건설 비용 조달과 여러 가지 사정이 악화돼 [[인플레이션]] 문제를 초래했으며, 그의 정부는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후에 군사 정부 출현의 한 배경이 됐다.
 
[[1961년]] 임기 종료와 함께 물러났으며, 그 후 상원의원이 됐다. 국민의 인기가 높아 [[1965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할 계획을 세웠으나, [[1964년]]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 정권이 들어서자, 군사 정권은 그가 옛 정권의 인물이었다는 이유로 그의 정치 활동을 금지했다.
 
이에 그는 [[미국]]과 [[유럽]]으로 망명했다가 [[1967년]] 정치 활동 금지가 풀려 브라질로 돌아왔으나, 정계에 복귀하지 않았으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은행가로 활동하며 여생을 보냈다.
 
[[1976년]] 리우데자네이루 부근의 [[헤젠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는데, 이 사고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례식 때는 군사 정부의 삼엄한 경비 속에 수십만명의 추모객이 리우데자네이루와 브라질리아의 거리를 가득 메웠다. 군사 정권이 무너진 후 브라질 각지에는 그의 이름을 기념하는 시설물이 많이 들어섰다.
 
그는 경제 사정을 악화시켰다는 비난도 받지만, 브라질 현대화의 아버지로 브라질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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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02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