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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는 복주(復州) 경릉군(竟陵郡, 현재의 [[후베이 성]] [[톈먼 시]]) 출신이며, 3살 때 호숫가에 버려졌다. 용개사(龍盖寺)의 주지인 [[지적선사]](智積禪師)가 그를 거두어들였으며, 후에 성은 주지의 성을 따 '육(陸)'으로, 이름은 점을 쳐 [[점괘]]에 따라 '우(羽)'로 하였다. 그는 말더듬이었지만, 웅변에 능하였다. 육우가 어렸을 때, 지적선사는 육우가 [[불경]]을 읽으며 승려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육우는 [[유교]]를 배우려고 하였다. 이에 지적선사는 육우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육우에게 매우 힘든 일을 하게 했지만, 육우는 대나무 가지로 가축의 등에 글씨를 몰래 연습하였다.
 
그 뒤, 육우는 절에서 도망하여 [[극단]]에 들어가 배우로 활약했으며, 천보년간(天寶年間)에 경릉태수(竟陵太守) [[이제물]](李齊物)의 눈에 들어 그의 추천으로 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이후, 경릉의 사마(司馬)인 [[최국보]](崔國輔)를 만나 그와 어울렸으며, '정행검덕(精行儉德)의 정신'을 이상으로 삼게 되었다.
 
[[지덕 (당나라)|지덕]](至德) 원년 ([[756년]]), 육우는 [[안사의 난]]을 피하기 위해 강남(江南)으로 피신하였고, 상원년간(上元年間)에 오흥(吳興, 현재의 [[저장 성]] [[우싱 구]])에 암자를 만들고 은거하면서 호를 '상저옹(桑苧翁)'으로 하고, 저서를 집필하였다. 그곳에서 육우는 그곳의 승려인 [[교연]](皎然)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여러 차 산지를 돌아다니며 차에 대해 연구하였다. 육우가 은거하는 동인 조정에서 그를 태자문학(太子文學)이나 태상시태축(太常寺太祝)에 임명하였으나, 그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10년 후인 [[건중]](建中) 원년 ([[780년]])에 14년 동안의 차 연구를 정리하여 《다경》 3권을 저술하였다.
* [http://english.china.com/zh_cn/gourmet/tea/11020889/20040710/11776099.html 육우와 중국의 차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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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733년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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