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서 (1948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범행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사회 각계 인사들은 박기서 석방 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9000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구명 운동을 펼쳤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102700209126009&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10-27&officeId=00020&pageNo=26&printNo=23350&publishType=00010 안두희 살해 박씨 각계서 구명운동], 동아일보, 1996-10-27</ref><ref>{{웹 인용|url=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525|제목=안두희, 김구를 쏜 까닭은?(1949년 6월 26일)|성=김|이름=용삼|날짜=2015-06-26|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2016-06-25}}</ref> 시민들은 그의 자택에 격려금과 위로 편지들을 보내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110700289124008&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6-11-07&officeId=00028&pageNo=24&printNo=2720&publishType=00010 안두희 살해 박기서씨 격려금 밀물], 한겨레, 1996-11-07 작성기사.</ref>
 
1997년 3월 범행에 대해 징역 8년이 구형되었다. 4월 인천지법은 정황을 참작하여 살인죄 최소형량인 징역 5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40300289127007&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7-04-03&officeId=00028&pageNo=27&printNo=2844&publishType=00010 안두희씨 살해혐의 박기서씨 5년 선고], 한겨레, 1997-04-03 작성기사.</ref> 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형량이 감형되었고<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0100289126010&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8-01&officeId=00028&pageNo=26&printNo=2946&publishType=00010 박기서씨 항소심 징역3년], 한겨레, 1997-08-01. 이종규 기자.</ref> 1997년 11월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되었다. 재판부는 '박씨의 범행동기는 주관적으로는 정당성을 가지나 법질서 전체 관점에서는 용인될 정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라고 형량 확정의 취지를 밝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11800289131010&editNo=7&printCount=1&publishDate=1997-11-18&officeId=00028&pageNo=31&printNo=3039&publishType=00010 박기서씨 징역 3년 확정], 1997-11-18. 한겨레, 김의겸 기자.</ref> 형 확정 후 복역하던 중 박기서는 이듬해 1998년 3월 13일 정부의 대사면 때 풀려났고<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3140020910100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3-14&officeId=00020&pageNo=1&printNo=23820&publishType=00010 552만 명 대사면 단행], 동아일보, 1998-03-14 작성기사. 하준우 기자.</ref> 현재는 택시 기사이다기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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