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풍 문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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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3-7-9}}
'''고쿠후 문화''' ({{llang|ja-y|国風文化, |こくふうぶんか|고쿠후 분카}}, "국풍 문화")는 [[일본|일본(日本)]]에서 [[10세기]] 초부터 [[11세기]] [[셋칸 정치|셋칸 정치(摂関政治)]] 시기를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로, [[12세기]] [[인세이|인세이(院政)]] 시기의 헤이안 말기 문화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당나라]]로 사신을 파견하는 [[견당사|견당사(遣唐使)]] 제도가 폐지되었으며, [[정토교|정토교(淨土敎)]]가 유행하였고, [[무라사키 시키부|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같은 여성 작가들이 활동하였으며 [[가나 문자|가나 문자(假名文字)]]가 발생하였다.
 
중국(당나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나라 시대|나라(奈良) 시대]]의 당풍(唐風) 문화와 대조되는 단어로서 이것을 국풍, 또는 '''와풍(和風)'''・'''왜풍(倭風)''' 문화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일본 문화 속에 남아 이어지고 있는 것이 많다.<ref>후세에는 일본 문화의 「유직고실(有職故実)」의 「정통적인 원류」로 여겨지게 되었다. 실제로 고대의 「쇼토쿠 태자(聖徳太子)」・「다이카 개신(大化改新)」・「임신의 난(壬申乱)」을 그린 여러 그림들에서 주인공인 태자나 소가노 이루카(蘇我入鹿) 등의 복식은 모두 헤이안 시대의 정장이었던 이칸소쿠타이(衣冠束帯)를 따르고 있으며, 큰 갑옷을 입고 큰 칼을 휘두르는 중세의 모습과 같은 전투를 하고 있다. 고대의 실상이 분명해진 것은 길게 이어진 중세(난세라 불리던)가 막을 내린 근세, 에도(江戸) 시대 중기에 고문사학(古文辞学)・가학(歌学)・국학(国学)・능묘(陵墓) 연구가 활발해지고 나서였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