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인노첸시오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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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아나클레토가 로마를 통치하게손아귀에 되면서넣자 인노첸시오 2세는 [[피사]]로 가는 배에 올랐다. 그 후 [[제노바]]를 거쳐 프랑스로 항해하였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는 프랑스 여론을 움직여 인노첸시오 2세를 교황으로 받들도록 종용하였다. 같은 해 10월 그는 [[뷔르츠부르크]] 시노드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로타르 3세]]와 신성 로마 제국의 주교들로부터 교황으로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1131년 1월 인노첸시오 2세는 잉글랜드의 [[헨리 1세]]로부터도 지지를 받았다. 1132년 8월 로타르 3세는 아나클레토를 몰아내고 인노첸시오 2세에 의해 황제 대관식을 받기 위한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이탈리아 원정 계획에 착수하였다.
 
아나클레토와 그의 지지자들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결사적으로 농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로타르 3세의 황제 대관식은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치를 수 밖에 없었다(1133년 6월 4일). 그 이외에 원정은 실패로 끝났다. 황제는 교황좌의 봉신이라는 교황청파의 주장으로 말미암아 황제로 등극한 로타르는 교황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토스카나의 마틸데]]의 영토를 얻었다.<ref>Schaff-Herzog, ''ibid.''</ref> 로타르 3세가 독일로 떠나자 인노첸시오 2세도 로마를 재차 떠나야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