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드 프랑스 (144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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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릉은 [[샤를 7세]]와 [[마리 당주]]의 막내이자 넷째 아들로 [[투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맏형인 도팽 루이는 아버지와 끊임없는 다툼을 벌였고 1456년부터는 부르고뉴 궁정에서 망명생활을 해왔으며, 일부에서는 왕위가 샤를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샤를 7세가 1461년에 사망하자, 루이가 그럼에도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루이는 막내 동생에게 속령지로서 [[베리 공작|베리 공국]]을 양도하기로 하였다. 이를 불만족스러워하던 샤를은 1465년 5월에 [[부르고뉴 공국|부르고뉴 공작]]의 후계자인 [[용담공 샤를|샤롤레 백작 샤를]]과 브르타뉴 공작 [[프랑수아 2세 드 브르타뉴]] 같은 다른 강력한 귀족들이 있는 [[공익 동맹]]에 참가하였다. 이는 [[공익 전쟁]]을 발발하여, 루이 11세와 샤를루아 백작 사이 [[콩플랑 조약]]으로 10월에 막을 내렸다.
 
== 노르망디 공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