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95016maphack(토론)의 19248657판 편집을 되돌림
잔글 185.89.219.224(토론)의 편집을 95016maphack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1번째 줄:
{{출처 필요|날짜=2017-08-09}}
'''매국노'''(賣國奴)는 [[매국]] 행위를 한 자를 비하하기 위해 쓰이는 [[용어]]이다.
 
== 설명 ==
비애국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비하하기 위한 용어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국가]]의 적을 뜻하는 '''국적'''(國敵)은 '자국의 독립과 존엄, 이익을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해 훼손하는 자', '''비국민'''(非國民)은 '[[사상]]·[[신조]]가 이질적이며 국민의 [[통일]]이나 일체성을 어지럽히는 자'이라는 뜻, 어감인 반면 '''매국노'''라는 단어는 모국을 외국에 팔아 넘겨 사익을 꾐하는 자를 말한다. [[주의]]해야 하는 점은 이러한 용어의 [[정의]]와 쓰임은 개개인의 [[주관]]과 [[이념]]에 따르는 부분이 크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의 주관에서 '애국적 행위'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사람의 주관으로는 '매국적 행위'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한 국가가 적대 세력과 [[전쟁]]를 하는 것에 대해 [[징고이즘]] 또는 [[매파]]에게는 '[[국익]]과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적을 분쇄하는 애국적 행위'이겠지만 [[비둘기파]]에게는 '일부 세력(군산복합체, 모국보다 강한 국력을 가진 동맹국 등)의 의향에 봉사하고, 자국의 [[독립]]을 위태롭게 하는 매국적 행위'또는 '애국을 가장한 매국적 행위'일 수도 있다.
 
== 매국 ==
'''매국'''은 [[조국]]에 대해 [[이적]]행위를 하여 자국을 해치며 적국을 이롭게 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종종 [[이념]]이나 [[당파]]성을 넘어 물밑에서 조직적인 [[이익]]그룹을 형성하여 매국행위를 하기도 한다.
 
줄 15 ⟶ 16:
외국과 공모해서 무력을 행사시킨 사람에게 적용되는 [[외환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 적용되며 한국의 형법에서 가장 무거운 죄 중 하나다.
 
== 사례 ==
=== 한국에서 사용 사례 ===
==== 한국사 ====
*가장 오래된 매국으로는 기원전 108년 한나라의 총공격을 고조선이 막는 중에 왕검성 내의 조정에서는 화·전 양파로 대립이 심각하여 주화파(主和派)는 집단적으로 이탈하거나 한군에게 투항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게 되었던 것 같다. 양복과 몰래 화의를 추진하던 일파로 보이는 [[한음 (고조선)|한음]](韓陰)·[[왕협]](王陜)·[[노인 (고조선)|노인]](路人)은 모두 도망하여 한군에 투항하다가 노인은 중도에서 죽고 말았다. 이러한 지배층의 내분 때문에 전력은 약화되었고 기원전 108년 주화파로써 성내에 잔류하고 있던 [[이계상|이계상 삼]](泥谿相參)은 사람을 시켜 [[우거왕]]을 죽이고 한군에 가서 항복하게 되었다. 우거왕 피살 후에도 왕검성의 저항은 완강하였으나 우거의 대신이었던 [[성기 (고조선)|성기]](成己)가 반격전을 펴 순체는 앞서 투항한 왕자 [[장 (고조선)|장]](長)과 노인(路人)의 아들 [[노최]](路最)로 하여금 성내의 백성들에게 고유(告諭)하여 성기를 죽였다. 이렇게 하여 위만조선의 3대 80여 년 계속된 왕조는 막을 내리고 한은 [[한사군]]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197년]] [[고구려]] [[산상왕]]의 형인 [[고발기#장남 발기(拔奇)|고발기]](高拔奇)가 왕위에 욕심을 품고 중국 [[한나라]]의 요동태수 [[공손탁]]의 군대를 빌려 자신의 나라를 공격하려 한 경우가 있었다.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은 동생들과의 권력 싸움에서 패배하자 [[당나라]] 고종에게 귀순하여 앞장서서 [[요동]] 지역을 무너뜨리고,[[이세적]]과 함께 [[평양성]]을 무너뜨린 경우가 있었다. 이는 고발기의 경우와 같이 외세의 힘을 빌려 나라를 팔아서라도 권력을 가지겠다는 권력욕에서 나온 것이었다.
====한국사====
*가장 오래된 매국으로는 기원전 108년 한나라의 총공격을 고조선이 막는 중에 왕검성 내의 조정에서는 화·전 양파로 대립이 심각하여 주화파(主和派)는 집단적으로 이탈하거나 한군에게 투항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게 되었던 것 같다. 양복과 몰래 화의를 추진하던 일파로 보이는 [[한음 (고조선)|한음]](韓陰)·[[왕협]](王陜)·[[노인 (고조선)|노인]](路人)은 모두 도망하여 한군에 투항하다가 노인은 중도에서 죽고 말았다. 이러한 지배층의 내분 때문에 전력은 약화되었고 기원전 108년 주화파로써 성내에 잔류하고 있던 [[이계상|이계상 삼]](泥谿相參)은 사람을 시켜 [[우거왕]]을 죽이고 한군에 가서 항복하게 되었다. 우거왕 피살 후에도 왕검성의 저항은 완강하였으나 우거의 대신이었던 [[성기 (고조선)|성기]](成己)가 반격전을 펴 순체는 앞서 투항한 왕자 [[장 (고조선)|장]](長)과 노인(路人)의 아들 [[노최]](路最)로 하여금 성내의 백성들에게 고유(告諭)하여 성기를 죽였다. 이렇게 하여 위만조선의 3대 80여 년 계속된 왕조는 막을 내리고 한은 [[한사군]]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197년]] [[고구려]] [[산상왕]]의 형인 [[고발기#장남 발기(拔奇)|고발기]](高拔奇)가 왕위에 욕심을 품고 중국 [[한나라]]의 요동태수 [[공손탁]]의 군대를 빌려 자신의 나라를 공격하려 한 경우가 있었다.
 
*[[고려]]시대 중기와 말기, 아예 [[원나라]]에 영토를 갖다 바친 반역행위를 한 [[최탄]], [[조휘]], [[탁청]]이 있다. 그 외에 고려의 권력을 잡은 상태에서 원나라에 협력하거나 부역행위한 자들도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대몽항쟁기 때의 [[홍복원]]과 [[권문세족]] 집단으로 [[조일신]], [[권겸 (고려)|권겸]], [[노책]], [[기철]]등이 있다.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은 동생들과의 권력 싸움에서 패배하자 [[당나라]] 고종에게 귀순하여 앞장서서 [[요동]] 지역을 무너뜨리고,[[이세적]]과 함께 [[평양성]]을 무너뜨린 경우가 있었다. 이는 고발기의 경우와 같이 외세의 힘을 빌려 나라를 팔아서라도 권력을 가지겠다는 권력욕에서 나온 것이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 일본군에 부역행위하는 자들도 많았었다. 이들을 [[순왜]] 혹은 [[가왜]]라고 불렀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함경도에 있을적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박하여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긴 [[국경인]]등이 대표적이다.
*[[고려]]시대 중기와 말기, 아예 [[원나라]]에 영토를 갖다 바친 반역행위를 한 [[최탄]], [[조휘]], [[탁청]]이 있다. 그 외에 고려의 권력을 잡은 상태에서 원나라에 협력하거나 부역행위한 자들도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대몽항쟁기 때의 [[홍복원]]과 [[권문세족]] 집단으로 [[조일신]], [[권겸 (고려)|권겸]], [[노책]], [[기철]]등이 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에 부역행위를 한 자들도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이괄의 난]] 때 역모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여 [[청나라]]로 도망하여 후에 호란이 발생했을 때 길잡이 역할을 한 [[한윤]], 그리고 [[조선 효종|효종]]의 [[북벌]]때 개인적인 파당의 세를 유지하고자 그 계획을 청나라에 밀고한 [[김자점]] 등이 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 일본군에 부역행위하는 자들도 많았었다. 이들을 [[순왜]] 혹은 [[가왜]]라고 불렀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함경도에 있을적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박하여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긴 [[국경인]]등이 대표적이다.
 
*[[1801년]] [[황사영]]은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프랑스 함대가 조선을 공격할 것을 부탁하는 [[황사영 백서]]를 작성했다가 발각되어 사형당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에 부역행위를 한 자들도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이괄의 난]] 때 역모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여 [[청나라]]로 도망하여 후에 호란이 발생했을 때 길잡이 역할을 한 [[한윤]], 그리고 [[조선 효종|효종]]의 [[북벌]]때 개인적인 파당의 세를 유지하고자 그 계획을 청나라에 밀고한 [[김자점]] 등이 있다.
 
*[[1905년]] 체결된 [[을사늑약]]과 [[1907년]] 체결된 [[한일신협약]]과 [[1910년]]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경술국적]]. 특히 을사오적은 한국어에서 매국노의 대표적인 용례이다.
*[[1801년]] [[황사영]]은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프랑스 함대가 조선을 공격할 것을 부탁하는 [[황사영 백서]]를 작성했다가 발각되어 사형당했다.
 
*유사시 북한에 동조하는 폭동을 일으킬 것을 선전한 [[이석기 (1962년)|이석기]]와 [[김홍열]]을 매국노로 분류하기도 한다.
*[[1905년]] 체결된 [[을사늑약]]과 [[1907년]] 체결된 [[한일신협약]]과 [[1910년]]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경술국적]]. 특히 을사오적은 한국어에서 매국노의 대표적인 용례이다.
*위안부 협상을 주도한 [[박근혜 정부]]와 [[윤병세]], 그리고 한일 군사협정을 체결한 [[대한민국 국방부]] 역시 매국노다.
 
=== 프랑스에서 사용 사례 ===
*유사시 북한에 동조하는 폭동을 일으킬 것을 선전한 [[이석기 (1962년)|이석기]]와 [[김홍열]]을 매국노로 분류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사용 사례===
프랑스에서는 [[라 마르세예즈]]의 4절에 "국적"이 사용되고 있다. 이 곡은 [[프랑스 혁명]]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반혁명 세력이 국적으로 간주되었으며 5절에 반혁명, 왕당파였던 [[프랑스와 클로드 드 부이예]] 장군을 지목한 가사가 나오며, 그는 현재도 국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기에는 [[비시 정권]]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 독일 협력자가 생겨났으며 연합군의 프랑스 해방 후 처벌이나 박해를 당했다.
 
=== 중국에서 사용 사례 ===
{{본문|한간}}
중국에서는 [[한족]] 또는 중국에 대해 매국 행위를 한 사람을 매국노라고 부르며 한간이라는 용어는 [[청나라]] 시대에 생긴 말이다, [[중일전쟁]] 중 [[일본제국]]에 협력한 [[왕징웨이 정권]]을 비롯한 중국인도 매국노로 불리며 대부분이 처형되었다. 이 대상에는 [[가와시마 요시코]]처럼 중국 출신자는 포함되지만, [[오타카 요시코]] 같은 일본 민족 출신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 [[저우쭤런]] 같은 일본에 협조적인 문화인도 문화 매국노로 칩거생활을 했다.
줄 45 ⟶ 44:
 
== 같이 보기 ==
* [[반역죄]]
* [[외환죄]]
* [[한간]] : 중국
* [[친원파]] : 고려
* [[친청파]] : 조선
* [[순왜]] : 조선
* [[친일파]] :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친중파]]
* [[친미파]]
* [[친러파]]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 매국|친일 관료]]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 수작/습작|친일 귀족]]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 중추원|친일 중추원]]
* [[탈영병]]
* [[진회 (남송)]]
* [[간첩]]
* [[애국심]]
* [[찬양]]
 
[[분류:국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