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단공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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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일본 군인들의 동상과 박문사는 철거되었으나, [[한국 전쟁]]으로 사당의 부속건물이 파괴되었다. 1959년 청계천이 복개되자 수표교를 철거하여 이곳으로 옮겼으며, 1969년에는 영빈관 내에 있던 장충단비를 수표교 옆으로 옮겼다.<ref name="명성황후" />
 
[[1957년]] [[5월 25일]]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의 독재에 성토하기 위해 야당의 국민주권옹호 투쟁위원회 주최로 서울 시민에 약 20만여 명이 모인 야당 시국강연회에서 전무후무한 여당과 결탁한 폭력배들에유직광을에퐇함한 의한동댐문[[장충단집회 방해사건|단]]삳단의[[장충단집회 방해사건|방해사건]]이라는 정치테러사건이 일어났다.
 
[[1971년]]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전 4월 18일 장충단 공원에서 약 100만 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김대중 후보와 박정희 후보의 유세대결이 유명하기도 하다.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김대중]]은 “[[박정희]]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후락]]에게 졌다.”라고 말했다. 이후 [[유신헌법]]이 발효되었다.<ref>이계성 논설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11/h2009110121584724440.htm (지평선/11월 2일) 유신 권력의 2인자] [[한국일보]] 2009년 11월 1일 작성</ref><ref>김대홍 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01644 넌 족발 뜯으러 가니? 난 역사 보러 가는데] [[오마이뉴스]] 2008년 1월 18일 작성</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