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랜드 공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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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해안 방위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하여 4개의 해상 요새와 다수의 해상 벙커를 건설하였다. 시랜드 공국이 영토로 삼고 있는 [[러프 요새]]는 원래 영국에서 10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해상 요새로, [[1942년]]에 건설되었다. 전시중에는 150~300명의 병력이 상시 거주하고 있었으나, 전쟁 종료 이후에 요새는 방치되었다.
 
그러던 것이 [[1967년]] [[9월 2일]] 원래 [[영국 육군]] 소령이었으며 해적방송의 운영자였던 [[패디 로이 베이츠]]가 당시 [[영국]]의 영해 밖에 존재하고 있던 이 요새에 독립선언을 발표하여 이 요새를 시랜드라고 이름짓고 자신도 로이 1세라고 명명하였다. 영국은 재판을 걸었으나, [[1968년]] [[11월 25일]]에 나온 판결에 의하면, 시랜드 공국이 위치한 [[러프 요새]]는 영국의 영해 밖에 존재하며, 주변국들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영국의 사법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당시엔 당시에는 3해리의 바다만 국가의 소유였다.소유였으며 현재는 12해리)12해리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시랜드를 독립국가로독립 국가로 인정한 나라나 정부는 없으며, 국제적으로 시랜드 공국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이 국가는 여권, 화폐는 물론 축구 국가대표팀도 있다. 베이츠가 시랜드 공국을 선포한 이듬해인 [[1968년]] 영국 해군이 시랜드에 접근해 강제 퇴거를 시도했으나 베이츠가 경고 사격을 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여 그냥 돌아갔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5&aid=0000005607& 팝뉴스 2007년 1월 8일자 10명 거주 가능한‘세계 최소 국가’“1200억 원에 팝니다”</ref>
 
[[1967년]]에 [[패디 로이 베이츠]]는 시랜드 공국을 독립국으로 선언하고 자신을 공작이라 칭하여 자신의 가족들과 시랜드 공국의 주민을 자처한 20여명의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러프 요새]]의 안에는 로이 1세의 가족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1년 후에 러프 요새의 근처를 지나던 [[영국 해군]]의 함정이 요새의 해상 벙커에서 많은 주민들을 발견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위협을 느낀, [[패디 로이 베이츠|로이 1세]]의 아들인 마이클 베이츠가 영국 해군의 함정에 총격을 가하였다. 당황한 [[영국 해군]]은 군사를 모아 시랜드 공국이 있는 [[러프 요새]]에 진입하고 강제로 로이 베이츠와 그의 가족 및 시랜드 공국의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키려고 하였으나, 이에 대한 [[영국]] 법원은 '시랜드는 영국 영해 밖 공해상에 있기 때문에 영국의 사법권이 미칠 수 없다'<ref>당시 영해의 기준은 육지로부터 3해리까지를 영해로 인정하였으므로, 시랜드 공국의 건설 당시에는 [[러프 요새]]에 영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육지로부터 12해리까지를 영해로 보므로, 현재는 엄연히 [[영국]]의 사법권 내에 있게 된다.</ref>라고 판결을 내리면서 [[영국 해군]]에게 회항하도록 하여 일단 내렸다. 이렇게 시랜드 공국은 끈질기게 독립을 지켜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