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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설회'''(國民演說會)는 [[대한제국]] 말기에 결성된 정치 단체이다. '''임시국민대연설회'''라고도 한다.
 
국민연설회의 탄생 배경에는 [[일진회]]의 끈질긴 [[한일 병합]] 청원 운동이 있었다. 일진회 주도의 합방이병합이 이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대한제국 내각의 총리대신 [[이완용]]이 자신을 중심으로 한 합방병합 운동을 벌이기 위해 국민연설회를 조직했다.
 
[[1909년]] [[12월 3일]]에 발기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국민연설회의 근간은 [[국시유세단]], 대한상무조합본부, [[신궁봉경회]] 등 이완용 계열의 단체들이었으며, 일진회와 경쟁하면서 별도로 한일 병합을 추진했다. 발기인으로는 [[민영규]], [[민영소]], [[김종한 (1844년)|김종한]], [[박용대]], [[남정철]] 등 전직 고위 관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초대회장은 민영소가 맡았다.
창립 이튿날 발기에 참여한 원로 대신들이 농상공부대신 [[조중응]]의 집에서 비밀 회의를 열었고, [[12월 5일]]에는 약 4천 명이 출석한 국민대연설회라는 집회를 개최하여 임원을 선정했다. 《[[대한매일신보]]》는 국민대연설회 개최 소식을 전하면서 이완용이 일진회의 공격에 맞서 "한국을 영구히 일본에 부속하기로 특별운동"을 벌이는 과정에 있었다고 밝히고, 국민연설회는 일진회가 합방청원서를 제출해 선수를 치자 이완용이 [[이인직]]을 앞세워 조직한 단체라고 보도했다.
 
국민연설회는 일진회의 합방청원서 제출로 합방병합 경쟁에서 뒤지게 되자 서둘러 조직된 뒤 독자적인 장서를 작성하였고, 단체 결성 일주일만인 [[12월 10일]]에 내각과 [[통감부]]에 이 장서를 제출했다. 장서 제출 직전에는 일반 회원에게 공포하는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회장 민영소와 부회장 [[이재극]], 전 탁지부대신 [[임선준]], 전 학부대신 [[이재곤]] 등 거물급 원로들이 참석했다.
 
일진회와의 지나친 경쟁은 물의를 빚기도 했다. 국민연설회가 노동자 수백 명을 모아 일진회 본부를 습격할 계획이라는 풍설이 돌아 경시청에서 [[예종석 (1872년)|예종석]]을 불러 사실 확인을 한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