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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육손]]은 병사들에게 띠풀을 소지하도록 하여 화공으로써 유비군을 공격하고, 형세를 갖춘 뒤 동시에 공격하여 [[장남 (촉한)|장남]](張南), [[풍습]] 등의 촉장의 머리를 베고 40여 곳의 진영을 격파하였다. 그리고 마인산에 포진된 유비의 군대를 포위, 공격해 유비군의 진영을 붕괴시키는데 촉군은 이 전투에서 대패하여 죽은 군사가 8만이 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벌에 실패한 유비는 겨우 달아나 백제성으로 들어간다. [[육손]]은 군사들을 이끌고 촉군을 계속 추격하였지만, [[조비]]가 이를 알아채고, 오나라 강동 땅이 비어있는 틈을 타 오나라 본국을 공격하였기에 [[육손]]은 군사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8월, 유비는 군사를 거두어 무현으로 돌아온다. 10월, 손권은 위나라의 침공을 맞이해 백제성에 머물고 있는 유비가 다시 공격할 것을 우려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했고 이에 유비가 응답하였다. [[223년]] 4월 [[관우]], [[장비]]의 사망과 이릉전쟁으로 인해 병이 심해진 유비는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이엄 (촉한)|이엄]]을 보좌로 삼고 영안궁에서 63살의 나이에 붕어(崩御)하였고, 8월에 혜릉(惠陵)으로 이장되었다. 그가 아렇게 영웅이된데에는 그의 일족인 유씨가문의 사람들의 도움도컸다 그가 가난하던시절 한 유씨가문 어른은 그를 친자식과 똑같이
 
키워주었고 유비가 실언을 하자 이놈아 황족이라는 놈이 그무슨 실언이냐 라고 충고를 해주었고 그의 종친인 군웅 유표와 유장은 그가 도망가던시절 그가 친척이것을 알고 도움을 주었고 또다른 종친이던 유표는 조조휘하였는데 유비의편을 들다 조조의 분노를 사기도했다
 
=== 유비의 후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