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마누스 바바리아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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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7년]] [[알퇴팅 수도원]]을 설립하였는데 그는 사후 이곳에 안치된다.
 
[[877년]] [[10월]] [[카를 2세|카를 대머리 황제]]가 죽자 그는 바로 [[알프스 산맥]]을 넘어 [[파비아]]에서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고, [[로마]]로 와 다시한번 신성 로마 황제의 자리를 노렸으나 [[교황 요한네스 8세]]는 카를로만에게 황제의 제관을 씌우는 것을 주저했다. 쓰러진 그는 다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오툉]]으로 회군하였다. 그해 그는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불구가 되었고, 879년까지 그는 [[뇌졸중]]으로 무기력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카를만은 결국 동생들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었다. 이때 루트비히에게작센을 다스리던 [[루트비히 3세 (동프랑크)|소 루트비히]]에게는 [[바이에른]]과 [[튀링겐]]을, 카를에게는알레만과 독일 남부를 다스리던 [[카를 3세|비만왕 카를]]에게는 [[이탈리아]]의 [[이탈리아의 군주|왕위]]를 물려주었다. [[878년]] 백작 이르멘페르트(Ermenpert)와 일부 병사들이 카를만을 암살하려 했다가 발각, 체포되었다. 이르멘페르트는 바로 [[서프랑크]]의 [[루이 2세 (서프랑크)|말더듬이 루이]]에게로 도피했다.
 
[[879년]] [[7월]] 카를만은 [[이탈리아]]로 편지를 보내 말더듬이 루이에게 황제관을 준 교황을 설득했지만, 설득에 실패했고 교황은 제관 수여를 거부했다. 879년 말 그는 [[뇌졸중]]이 심해져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프룸의 레기노]] 주교에 의하면 여전히 대화는 가능했고, 글씨는 직접 쓸 수 있었다고 한다. [[880년]]에 사망했는데 일설에는 [[3월 22일]]에 사망했다고 하고, 루벤세스(Iuvavenses) 연대기에 의하면 [[9월 21일]]에 사망했다고 한다.